영어/스포츠 영어 |
2010/01/28 20:53 |
Posted by ICCsports 밝은터
스포츠 스타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out of context'라는 말이다. '상황에 벗어난' '문맥에 맞지 않은'이라는 의미의 'out of context'는 앞뒤 정황과 주변 상황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이 했던 '말만' 가지고 기자들이 일을 확대시킬 때 선수들이 이를 설명하기 위해 자주 쓴다.
A라는 선수가 B라는 선수에 대해 평가를 했는데 90%는 칭찬이었고 10%는 건전한 비평이었다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언론에서 10%의 건전한 비평에만 집중했다면 이는 out of context다.
코비 브라이언트를 비난한 것으로 알려진 필 잭슨 감독의 자서전을 읽어보면 '증오'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애정'도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코비에 대한 애증(愛憎)이 함께 있었던 책에서 주류 언론 기자들은 '미움'만 뽑아내 싸움을 만들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잭슨은 이상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 그렇게 욕했던 브라이언트와 다시 한 팀에서 일하게 됐으니 말이다.
몇 년 전 LA 타임스가 보도한 아널드 슈워제네거(캘리포니아 주지사)의 인종차별 발언도 사실은 out of context라고 할 수 있다. 슈워제네거는 "(보니 가르시아 공화당 의원이) 쿠바출신인지, 푸에르토리코 출신인지 모르겠지만 어느 정도 피가 섞여서 다혈질이다"고 사석에서 말했는데 그 내용을 녹음한 테이프가 공개되면서 많은 사람이 곤욕을 치렀다.
이에 대해 당사자인 가르시아 의원은 "그의 말은 완전히 문맥에서 벗어나게 나온 것이기 때문에 전혀 문제가 없다(Not only were the brief remarks taken completely out of context from a much longer conversation)"고 말했다. 이 대화 테이프의 전체 내용을 들어본 사람들에 따르면 슈워제네거 주지사는 가르시아 의원에 대한 칭찬을 많이 했다고 한다.
조지 스타인브레너 뉴욕 양키스 구단주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한 적이 있다.
"언론이 잘하는 일은 바로 문맥 밖으로 발언을 뽑아내는 것이다. 언론인은 그런 것을 좋아한다. 나는 그것이 신뢰를 무너뜨리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내가 무슨 말을 하면 언론은 그 중에서 몇 가지 단어를 뽑아내 원하는 방법대로 보도한다. 이는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다.(One of the things you people in the media do is take things out of context. The press loves to do that. To me, that's a violation of trust. I'll say a sentence and they'll pick four words and make it sound like they want it to sound. It happens over and over again.)"
특집/추억의 스페셜 |
2010/01/26 21:05 |
Posted by ICCsports 밝은터
지난 2005년 한국에서는 김진호라는 자폐아(autistic) 수영선수가 화제의 인물이 된 바 있다. 진호군은 모 방송의 '진호야 사랑해'라는 프로그램에 고정 출연하면서 자신의 삶을 소개한 바 있는데 그는 2005년 세계 장애인 수영선수권 대회에서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목에 걸어 한국 국민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진호군의 기록은 비장애인과 겨뤄도 손색이 없을 만큼의 좋은 성적이었다.
2006년 미국에서도 진호군의 경우와 비슷한 신드롬이 일었다. 주인공은 뉴욕 그리스 아테나 고교의 농구 선수 제이슨 맥엘웨인(당시 17세)군이었다. 고교 졸업반이었던 5피트6인치의 단신인 맥엘웨인은 2006년 시즌 마지막 홈경기에 약 4분 만 뛰고 무려 20득점을 올려 화제의 인물이 됐다. 미국 내 최고의 스포츠 네트워크인 ESPN과 공중파 방송인 CBS는 이 경기 장면을 반복적으로 내보내며 감동적인 이야기를 알렸다.
자폐아인 맥엘웨인(이하 J-맥)은 이 학교의 농구선수는 아니었다. 팀과 함께 하며 도우미 역할을 하는 매니저였던 그에게 짐 존슨 감독은 시즌 마지막 홈경기가 열리기 전 유니폼을 건네줬다. 매니저였지만 틈틈이 열심히 슛 연습을 했던 그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던 것이다.
J-맥은 경기 내내 뛰지 못했다. 그러나 소속팀이 큰 점수 차로 앞섰던 경기 종료 약 4분 전 기회가 찾아왔다. 존슨 감독의 손가락이 J-맥을 향하고 있었다. 홈팬들이 열렬한 환호를 보냈고 J-맥은 들어가자마자 슛을 던졌다. 그러나 공은 림을 맞지도 않았다. 두 차례 슛을 모두 성공시키지 못한 J-맥은 실망하지 않고 3점포를 쏘아대기 시작했다.
4분 동안 무려 6개의 3점슛을 성공시킨 그의 개인 득점은 20점. NBA 선수도 이렇게 소나기 슛을 성공시키기 어려운데 선수 경험이 거의 없는 자폐아 선수가 3점슛을 성공시키는 일은 그야말로 경이적이었다. 홈팬들은 마치 로큰롤 스타가 온 것처럼 환호했다. 경기가 끝난 후 팬들은 플로어로 달려나갔다. 그리고 J-맥을 둘러싸고 그의 인간 승리를 함께 기뻐했다.
TV를 통해 알려진 드라마와 같은 이야기는 청취율이 가장 높은 스포츠 라디오 토크쇼인 짐 롬 쇼에서 15분 동안 상세히 소개됐다. 방송이 끝나자 반응이 폭발적이었다고 한다. 이 쇼의 진행자인 롬은 "내가 지금까지 들었던 이야기 중 가장 감동적이었다. 나는 그의 이야기가 할리우드에서 영화로 만들어질 것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한 청취자는 "방송을 청취하는 내내 눈물을 흘렸다"고 했고 다른 청취자는 "수백만 달러를 받아도 항상 불만투성인 오늘날의 프로 선수들이 보고 배워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맥엘웨인 군은 2006년 ESPY 시상식에서 올해 스포츠 최고의 순간상을 받았다. 그의 최고의 순간은 코비 브라이언트의 81득점 경기를 넘어섰던 것. 그는 이후 오프라 윈프리 쇼, 래리 킹 라이브, 굿모닝 아메리카 등에 출연해 전국적인 명사가 됐다.
그는 2008년 2월5일에는 'The Game of My Life'라는 책을 출간했다. 그의 인생은 콜롬비아 픽쳐스에서 영화화할 예정이며 현재 대본 작업이 한창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영화에는 농구스타였던 매직 존슨이 투자에 참여할 것으로 알려졌다. J-맥은 이후 검정고시(GED)를 통해 고교 졸업장을 받았으며 2009년 현재 뉴욕주의 한 식품점에서 점원으로 일하고 있다.
[글: 밝은터(ICCsports.com의 블로거)]
■ 자폐증: 자폐증은 한 개인의 의사소통, 그리고 주위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방식에 영향을 주는 장기적으로 지속되는 발달장애이다. 자폐증을 가진 아동이나 어른들은 의미 있는 방법으로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지 못한다.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에 문제가 있고, 친구관계를 맺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자폐증을 가진 사람은 학습장애(를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영국의 The National Autistic Society)
2006년 5월25일 열린 디트로이트 피스톤스와 마이애미 히트의 2006 NBA 플레이오프 동부 컨퍼런스 2차전에서 바베타 심판은 싸움을 잘 말려 칭찬을 받았다. 상황은 이랬다. 피스톤스의 리처드 해밀턴이 속공으로 골밑 레이업을 시도하는 순간 히트의 섄든 앤더슨이 강하게 블락을 시도했는데 곧이어 해밀턴과 앤더슨은 가벼운 몸싸움을 했다.
주먹질이 오갈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바베타 심판은 해밀턴을 '박스 아웃'해 앤더슨과 멀리 떨어지게 했다. '박스 아웃'은 상대 공격수가 안쪽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는 농구 용어로 당시 심판 33년 경력의 바베타는 훌륭하게 해밀턴을 '박스 아웃' 했다. 자칫 잘못하다간 큰 싸움으로 불거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바베타 심판은 싸움을 말리다가 큰 변을 당한 적도 있었다. 패트릭 유잉과 제일런 로즈가 코트에서 싸움을 했는데 이때 로즈가 날린 왼손 펀치에 맞고 코가 부러지는 부상을 당했던 것. 바베타의 희생정신은 놀라울 정도다. 어떻게 보면 심판이 농구 경기를 좌지우지할 수 있지만 바베타의 생각은 좀 다르다. 그는 ABC-TV와의 인터뷰에서 "농구 경기를 영화라고 한다면 나는 B급 배우다. B급 배우는 영화의 스타 배우를 돕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NBA 스타 출신인 유잉은 바베타에 대해 "그는 엄격하면서도 공정하다. 정말 뛰어난 심판이다"라고 칭찬했다.
2천 경기 이상을 쉬지 않고 '뛰었던' 바베타가 여전히 NBA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로 남아 있는 것은 그의 철저한 프로 정신 때문이다. 그는 매일 8마일(1마일=1650m)을 달린다고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코비 브라이언트, 르브론 제임스, 드웨인 웨이드와 같은 젊고 빠른 선수들의 경기 흐름을 쫓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TNT의 농구 분석가인 찰스 바클리는 "바베타는 나보다 더 힘이 세고 빠른 것 같다. 그를 보면 솔직히 조금 창피하다"고 말했다.
1975년부터 NBA 심판을 하면서 바베타는 물론 실수도 많이 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지난 1998년 NBA 챔피언 결정전 6차전에서 유타 재즈의 하워드 아이즐리가 종료 직전에 던진 3점슛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이후 바베타는 재즈 팬들이 가장 싫어하는 심판이 됐다. 샌안토니오 스퍼스의 스타인 팀 던컨과는 이런 일이 있었다.
던컨이 "당신 잘못 판정 내렸다"고 하자 바베타는 "아니야. 내가 맞아. 만약 내가 틀리면 돈을 걸기는 그렇고 햄버거를 사겠다"고 했다. 나중에 TV 화면을 보니 던컨의 말이 맞았고 10일 후에 바베타는 맥도널드 햄버거 해피 밀을 사다가 던컨에게 줬다고 한다. '팀, 네가 맞았어'라는 노트와 함께.
또한 NBA 경기 도박에 연루됐던 팀 도나기라는 심판은 "바베타가 심판을 보는 경기에서 일방적인 승부는 거의 없다. 그는 농구 경기가 박빙의 승부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 심판이다"라며 공정성에 의심을 품게 하는 글을 써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바베타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를 아끼는 팬도 있다. 대표적인 바베타 팬은 댈러스 매버릭스의 마크 큐반 구단주다. 심판에 대한 불만이 가장 많고 심판을 비난해 여러 차례 벌금을 물었던 구단주인 큐반은 "바베타가 좋은 동료와 함께 심판진이 되면 그 경기는 즐길 수 있다. 그는 규정에 있는 대로 판정을 내리는 훌륭한 심판"이라고 극찬했다.
또한 바베타의 동료 심판인 베넷 살바토어는 "바베타는 코치와 선수들이 경기에 집중하도록 만든다"며 그의 능력을 높이 평가했다. 바베타는 선수와 코치에 열려 있는 심판으로 잘 알려졌다. 그는 선수나 감독이 불만이 있으면 '언제든지 와서 얘기해라'라는 '바디 랭귀지'를 쓰는 심판이다.
바베타는 또한 선수와 감독이 판정에 대해 항의할 때 유머로써 답을 해 어려운 상황을 지혜롭게 잘 넘어가는 심판으로도 유명하다. 심판도 인간이라 실수를 한다. 농구에서 10번 슛을 던져 5번 적중시키는 선수는 엄청난 박수를 받는다. 바베타는 100번 판정에 98번은 정확히 판정을 내리는 심판이다. 2회의 실수는 따라서 용서를 해야 한다. 그도 인간이기 때문이다. [글: 밝은터(ICCsports.com. 블로거)]
[바베타 프로필]
▷NBA 심판 경력: 1975년부터 지금까지
▷개인기록: 2003-04시즌에 2천 경기 연속 심판 기록
▷생년월일: 1939년 12월10일
▷출신교: 뉴욕 파워 메모리얼 고교, 세인트 프란시스 칼리지
[NBA 심판]
■ NBA 심판의 연봉: 초봉이 10만 달러 수준. 베테랑 심판은 25만 달러 이상의 연봉을 받는다. 플레이오프 경기를 맡는 심판은 수입은 더 높아진다.
■ 심판의 하루: 심판도 선수 못지않게 바쁘다. 경기를 위한 준비를 하기 때문이다. 심판도 선수와 코치처럼 비디오 분석을 한다. 전날 경기가 끝난 직후 경기 내용이 담긴 CD-디스크를 전달받으면 노트북 컴퓨터를 통해 새벽까지 경기를 되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자신이 잘못 판정 내린 것은 없는지를 보는 것이 비디오 리뷰의 핵심이다.
■ 심판도 인간: 농구 경기를 보면 메이크-업 콜과 편향적인 판정이 내려질 때가 있다. 심판은 최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내리려고 하지만 인간인지라 분위기와 감정에 영향을 받게 되어 있다. 예를 들어 홈팀에게 유리한 판정을 내린다든가, 수퍼스타의 공격시 더 휘슬을 자주 불어준다든가, 오심을 한 후에 이를 무마하기 위해 피해를 본 팀에 유리한 판정(make-up call)을 내린다든가 하는 일이 종종 발생하는 것이다.
■ 좋은 심판: 선수들이 플레이를 공격적으로(aggressive) 하도록 유도하면서 거친 플레이(rough)는 못하게 하는 심판이 좋은 심판이다. 툭하면 파울 콜을 부르면서 경기의 흐름을 끊어 놓는 심판은 능력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심판은 따라서 템포를 잘 조절해야 한다. 공격적인 것이 거침(rough)의 선을 넘어서려고 하면 휘슬을 불어 선수들의 감정을 누그러뜨려야 한다. <밝은터>
특집/스포츠 스타 열전 |
2010/01/11 12:18 |
Posted by ICCsports 밝은터
"MVP, MVP!"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LA 클리퍼스 경기를 보면서 이런 소리를 듣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물론 LA 레이커스와의 대결에서 코비 브라이언트와 같은 레이커스 선수에 대해 이런 외침이 있었지만 클리퍼스 선수가 이런 칭송을 듣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주인공은 전 클리퍼스 포워드 엘튼 브랜드. 브랜드는 지금은 필라델피아 76ers 소속이다.
글: 밝은터(ICCsports.com 블로거)
듀크대 3학년이 되기 전에 프로 진출을 선언한 브랜드는 1999년 NBA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1번으로 지명됐다. 그를 지명한 팀은 마이클 조던이 은퇴한 후 재건을 노렸던 시카고 불스. 듀크대 동문의 엄청난 비난 속에 NBA에 진출한 브랜드는 첫 시즌에 20.1득점, 10리바운드를 기록한 후 스티브 프랜시스와 공동으로 신인상을 받았다.
브랜드는 다음 시즌에도 20.1득점, 10.1리바운드를 기록했고 이후에도 거의 매경기 20점과 10리바운드를 기록했지만 리그의 최약체팀에 속했기 때문에 그를 올스타로 인식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2002년에 딱 한 번 올스타로 뽑혔지만 이것도 샤킬 오닐이 부상을 당해 대신 출전한 것이었다.
브랜드는 불스에서 성공적인 2년을 마친 후 클리퍼스로 트레이드됐다. 브랜드는 클리퍼스 선수로는 대니 매닝 이후 처음으로 올스타에 선정되는 등 클리퍼스 최고의 선수로 자리 잡았다. 올스타 정도가 아니라 클리퍼스 팬들은 그를 격려하기 위해 "MVP, MVP!"를 외치곤 했다.
개인 성적만으로 그는 충분히 MVP 후보에 오를만했지만 항상 팀 성적이 걸림돌이었다. 그런데 2005-06시즌에 브랜드는 24.7득점을 기록했고 클리퍼스는 플레이오프 6번 시드를 잡아 MVP 후보가 될 수 있었다. 바로 그 시즌에 클리퍼스는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덴버 너기츠에 승리해 1976년 이후 첫 2라운드 진출의 감격을 누렸다. 1976년도 클리퍼스가 아닌 버팔로 브레이브스라는 이름으로 이룬 것이었다.클리퍼스는 2라운드에서도 승리할 가능성이 있었지만 피닉스 선스에 3승4패로 아깝게 무릎을 꿇었다. 브랜드는 그해 MVP로 선정되지 못했다.
클리퍼스가 상승 무드를 타는 듯했다. 그런데 바로 이듬해 클리퍼스는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브랜드가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시즌 대부분 결장했기 때문이다. 브랜드의 클리퍼스와의 계약은 만료되는 상황이었다. 브랜드가 옵션 계약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결국 브랜드는 2008년 7월9일 76ers로 이적했다. 5년 계약이었다. 클리퍼스 팬들은 실망했다. 돈 욕심에 LA를 떠난다고 비난했다. 클리퍼스 입장에서는 어찌보면 다행이었을까. 브랜드는 2009년 2월5일 어깨 수술을 받았다. 대형 계약을 맺은 후 그가 76ers에서 뛴 첫 시즌의 경기 수는 29경기에 불과했다.
다음 시즌인 2009-10시즌에 복귀한 브랜드는 31경기에 출전했지만 주전 출전은 18경기에 불과했다. 성적도 이전 같지 않았다. 평균 20득점을 꾸준히 올려줬던 그는 76ers에서 13득점을 올리는 선수가 됐다. 노화현상이었을까. 그는 NBA 역사상 개인 통산 평균 20득점, 10리바운드를 기록한 4명 중 한 명이었는데 그의 평균 득점은 19점대로 내려갔다. 평균 리바운드는 간신히 10점대를 유지했지만 이런 추세대로라면 9점대로 내려가는 것은 시간 문제다.
브랜드는 클리퍼스 팬들의 비난을 받고 팀을 옮겼는데 대학 시절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브랜드는 듀크대 2학년을 마치고 프로에 입문했다.
NBA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1번으로 지명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고 대학을 일찍 떠나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그는 듀크대 출신 농구 선수 중 처음으로 졸업장 없이 NBA로 간 선수로 기록됐다. 당시 브랜드가 전통을 깨자 제니퍼라는 듀크대 학생은 그에게 e-메일을 보냈다.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듀크는 명문대다. 그래서 모든 선수가 졸업장을 받고자 하는데 당신이 그 전통을 무너뜨렸다. 당신은 더 이상 듀크의 가족이 아니다." 이에 브랜드는 "당신의 부모가 이 학교에 당신을 보내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지 잘 알고 있다. 당신과 같은(부자를 의미) 부류는 나와 같은(가정 형편이 어려운) 사람을 이해하지 못한다. 당신과 듀크 동문이 나를 가족으로 받아들이지 않아도 상관하지 않겠다"고 답변했다.
두 사람의 의견 교환은 당시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브랜드가 대학 입학을 앞두고 듀크를 선택했던 것은 선수들의 졸업률이 높았기 때문인데 그런 그가 프로에 일찍 입문한 것은 의외였다. 브랜드는 그러나 듀크의 명예를 손상시키지는 않았다. 그는 듀크대 출신 중 처음으로 NBA 드래프트에서 1번으로 지명된 선수로 기록된 바 있다.
시카고 불스에 지명된 브랜드는 2년 동안 좋은 성적을 냈지만 리그 최하위팀에서 뛰었기 때문에 주목을 받지 못했다. 브랜드는 두 시즌을 뛴 후 곧바로 LA 클리퍼스로 트레이드됐는데 두 번째 팀 역시 서부에서 하위권 팀이었다.
브랜드는 6피트8인치의 작은 파워포워드였기 때문에 그가 프로에서 좋은 성적을 낼 것으로 보는 사람은 드물었지만 그는 거의 매경기 10리바운드 이상을 잡아냈다. 10리바운드 중 공격 리바운드는 절반에 조금 못 미친다.
키가 작은 그가 공격 리바운드를 잘 잡아내는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이에 대해 "리바운드는 결단력에 의해 좌우된다. 물론 나의 긴 팔과 다른 선수에 비해 볼의 흐름을 잘 읽는 능력도 있을 것이다. 나는 특히 공격리바운드를 좋아한다. 공격 리바운드를 잡는다고 해서 바로 득점으로 연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공격 리바운드의 성공은 팀의 사기를 올리는 효과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브랜드는 화려한 듯하면서도 화려하지 않고, 화려하지 않은 듯하면서도 화려한 특이한 선수였다.
노스캐롤라이나대 출신인 컵책 단장 및 부사장은 1976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같은 해 NBA 드래프트에서 워싱턴 불리츠(위저즈)에 의해 전체 13번으로 지명돼 프로생활을 시작한 바 있는 선수 출신이다.
워싱턴에서 스타로 자리잡았던 그는 1981년 레이커스와 계약하며 '호숫가의 사나이‘가 됐다. 그러나 첫 시즌에 무릎 부상을 당한 그는 재활 치료 중 UCLA에서 MBA 과정을 시작했다. 레이커스의 프런트 오피스 일을 돕기 위한 준비였다.
이후 기적처럼 코트에 돌아온 컵책은 1985년에 레이커스의 챔피언 등극을 도운 후 1986년부터 단장 사무실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당시 농구팀 운영 책임자였던 웨스트의 오른팔 역할을 했던 컵책은 14년간 카리스마가 넘치는 단장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고 지난 2000년 웨스트가 현직에서 물러나자 새로운 단장으로 취임했다.
‘쇼타임’때의 레이커스는 보스턴 셀틱스와 라이벌 관계를 유지하면서 80년대를 풍미했던 팀. 매직 존슨, 커림 압둘 자바, 제임스 워디, 바이런 스캇 등으로 이뤄진 ‘쇼타임’ 레이커스는 NBA가 미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리그로 발돋움 시키는데 결정적인 공을 세운 바 있다.
코비 브라이언트와 샤킬 오닐이 이끌었던 현재의 레이커스도 막강하다. 한때 3년 연속 챔피언에 오르며 무적함대를 자랑했다. 레이커스 90년대에 시카고 불스가 있었다면 2000년대에는 레이커스가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80년대의 팀과 현재의 팀이 맞붙는다면 80년대의 팀이 우세하다는 주장이 있었다.
‘쇼타임’ 레이커스의 일원이자 '샤크-코비' 시대에 뉴저지 네츠의 감독이었던 바이런 스캇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매치업별로 살펴보기로 한다.
▶센터간의 대결
샤킬 오닐은 커림 압둘 자바를 상대로 지금처럼 득점을 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실점도 많을 것이다. 압둘 자바의 스카이 훅 샷을 막을 선수는 아무도 없다. 또 압둘 자바는 근성이 있는 선수다. 그는 화나면 더욱 점수를 올리는 선수다.
▶슈팅 가드의 대결
‘쇼타임’ 레이커스의 슈팅가드였던 스캇은 “솔직히 이 매치업은 내가 자신이 없다. 나는 경기 내내 코비 브라이언트를 밀착 마크하느라 시간을 다 보낼 것이다. 슈팅 가드 싸움에서는 우리가 밀린다”고 말했다.
▶포인트 가드 대결
매직 존슨을 막을 포인트 가드는 없다. 코비가 매직을 막는다고 하더라도 존슨이 포스트 플레이를 하면 도저히 상대가 되질 않는다. 데릭 피셔나 린지 헌터와 같은 키작은 가드들은 더더욱 매직을 막기 어려울 것이다.
▶포워드의 대결
제임스 워디를 로버트 오리가 막을 수 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키가 크면서도 몸이 가드 못지 않게 빠른 워디를 제대로 막을 수 있는 선수는 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없다고 볼 수 있다. [밝은터]
미니 박스 전설적인 아나운서 칙 헌은 누구인가
LA 레이커스 중계의 ‘전설적인 목소리’ 칙 헌이 2002년 8월5일 85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칙 헌은 ‘슬램 덩크’등 그동안 숱한 신생어를 만들어내며 농구팬들의 사랑을 받아 온 언어의 마술사. 이젠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만 그의 ‘농구 중계’ 일생을 담아봤다.
◇ 칙 헌은 누구인가
칙 헌은 아무리 몸이 아파도 일단 중계석에 앉아야 직성이 풀리는 그야말로 ‘스포츠 중계를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다. 1916년 11월27일 일리노이주 오로라에서 출생한 그의 본명은 프랜시스 대일 헌이다. 칙(chick)이라는 별명은 AAU 농구 선수였던 시절 운동화가 든 박스를 받았는데 그 안에 치킨(chicken)만 들어 있는 것이 발견됐고 이때부터 동료들이 ‘칙(chick)’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지난 56년 LA로 이주하면서 본격적으로 LA 스포츠 경기를 중계하기 시작했다. 그는 USC 풋볼과 농구의 아나운서로 활동했고 이후에는 라디오 토크쇼를 진행하며 그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60년대에 에미상을 두 차례나 수상 했던 헌은 레이커스가 미니애폴리스에서 LA로 옮긴 61년부터 레이커스의 ‘플레이-바이-플레이’ 중계 아나운서가 된 이후 2002년 6월12일 뉴저지 네츠와의 챔피언십 결정전 4차전으로 끝으로 42년간의 중계 일생을 마감하게 됐다.
특히 지난 65년 11월21일부터 2001년 12월16일까지 36년동안 3천338경기에 연속 마이크를 잡았다. 칙 헌이 마이크를 잡았던 기간 레이커스는 총 36만2천32득점에 2천74승을 거뒀고 8차례나 NBA정상에 올랐다.
제리 웨스트, 윌트 체임벌린, 커림 압둘 자바, 매직 존슨, 샤킬 오닐, 코비 브라이언트 등이 챔피언에 오르는 장면을 목격하는 등 232명의 플레이를 시청자들에게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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