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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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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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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A 경기를 보면 엄격하면서도 비교적 공정한 심판 한 명이 눈에 띈다. 딕 바베타(1939년생)가 주인공. 70세가 넘는 노인이 엄청나게 빠르게 진행되는 경기에서 심판이 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동년배의 다른 사람 같으면 달리는 것 자체가 힘들겠지만 바베타는 잘 달리고 정확하게 판정을 내린다. 그의 특기는 선수들의 싸움 말리기. 

Timeout
Timeout by themikelee 저작자 표시변경 금지 엄지손가락을 올린 이가 바베타


2006년 5월25일 열린 디트로이트 피스톤스와 마이애미 히트의 2006 NBA 플레이오프 동부 컨퍼런스 2차전에서 바베타 심판은 싸움을 잘 말려 칭찬을 받았다. 상황은 이랬다. 피스톤스의 리처드 해밀턴이 속공으로 골밑 레이업을 시도하는 순간 히트의 섄든 앤더슨이 강하게 블락을 시도했는데 곧이어 해밀턴과 앤더슨은 가벼운 몸싸움을 했다.

주먹질이 오갈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바베타 심판은 해밀턴을 '박스 아웃'해 앤더슨과 멀리 떨어지게 했다. '박스 아웃'은 상대 공격수가 안쪽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는 농구 용어로 당시 심판 33년 경력의 바베타는 훌륭하게 해밀턴을 '박스 아웃' 했다. 자칫 잘못하다간 큰 싸움으로 불거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바베타 심판은 싸움을 말리다가 큰 변을 당한 적도 있었다. 패트릭 유잉과 제일런 로즈가 코트에서 싸움을 했는데 이때 로즈가 날린 왼손 펀치에 맞고 코가 부러지는 부상을 당했던 것. 바베타의 희생정신은 놀라울 정도다. 어떻게 보면 심판이 농구 경기를 좌지우지할 수 있지만 바베타의 생각은 좀 다르다. 그는 ABC-TV와의 인터뷰에서 "농구 경기를 영화라고 한다면 나는 B급 배우다. B급 배우는 영화의 스타 배우를 돕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NBA 스타 출신인 유잉은 바베타에 대해 "그는 엄격하면서도 공정하다. 정말 뛰어난 심판이다"라고 칭찬했다.

2천 경기 이상을 쉬지 않고 '뛰었던' 바베타가 여전히 NBA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로 남아 있는 것은 그의 철저한 프로 정신 때문이다. 그는 매일 8마일(1마일=1650m)을 달린다고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코비 브라이언트, 르브론 제임스, 드웨인 웨이드와 같은 젊고 빠른 선수들의 경기 흐름을 쫓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TNT의 농구 분석가인 찰스 바클리는 "바베타는 나보다 더 힘이 세고 빠른 것 같다. 그를 보면 솔직히 조금 창피하다"고 말했다. 

Denver Nuggets v Chicago Bulls

 
1975년부터 NBA 심판을 하면서 바베타는 물론 실수도 많이 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지난 1998년 NBA 챔피언 결정전 6차전에서 유타 재즈의 하워드 아이즐리가 종료 직전에 던진 3점슛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이후 바베타는 재즈 팬들이 가장 싫어하는 심판이 됐다. 샌안토니오 스퍼스의 스타인 팀 던컨과는 이런 일이 있었다.

던컨이 "당신 잘못 판정 내렸다"고 하자 바베타는 "아니야. 내가 맞아. 만약 내가 틀리면 돈을 걸기는 그렇고 햄버거를 사겠다"고 했다. 나중에 TV 화면을 보니 던컨의 말이 맞았고 10일 후에 바베타는 맥도널드 햄버거 해피 밀을 사다가 던컨에게 줬다고 한다. '팀, 네가 맞았어'라는 노트와 함께. 
 
또한 NBA 경기 도박에 연루됐던 팀 도나기라는 심판은 "바베타가 심판을 보는 경기에서 일방적인 승부는 거의 없다. 그는 농구 경기가 박빙의 승부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 심판이다"라며 공정성에 의심을 품게 하는 글을 써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바베타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를 아끼는 팬도 있다. 대표적인 바베타 팬은 댈러스 매버릭스의 마크 큐반 구단주다. 심판에 대한 불만이 가장 많고 심판을 비난해 여러 차례 벌금을 물었던 구단주인 큐반은 "바베타가 좋은 동료와 함께 심판진이 되면 그 경기는 즐길 수 있다. 그는 규정에 있는 대로 판정을 내리는 훌륭한 심판"이라고 극찬했다.

또한 바베타의 동료 심판인 베넷 살바토어는 "바베타는 코치와 선수들이 경기에 집중하도록 만든다"며 그의 능력을 높이 평가했다. 바베타는 선수와 코치에 열려 있는 심판으로 잘 알려졌다. 그는 선수나 감독이 불만이 있으면 '언제든지 와서 얘기해라'라는 '바디 랭귀지'를 쓰는 심판이다.

바베타는 또한 선수와 감독이 판정에 대해 항의할 때 유머로써 답을 해 어려운 상황을 지혜롭게 잘 넘어가는 심판으로도 유명하다. 심판도 인간이라 실수를 한다. 농구에서 10번 슛을 던져 5번 적중시키는 선수는 엄청난 박수를 받는다. 바베타는 100번 판정에 98번은 정확히 판정을 내리는 심판이다. 2회의 실수는 따라서 용서를 해야 한다. 그도 인간이기 때문이다. [글: 밝은터(ICCsports.com. 블로거)]


[바베타 프로필]
▷NBA 심판 경력: 1975년부터 지금까지 
▷개인기록: 2003-04시즌에 2천 경기 연속 심판 기록 
▷생년월일: 1939년 12월10일
▷출신교: 뉴욕 파워 메모리얼 고교, 세인트 프란시스 칼리지

Los Angeles Lakers vs Houston Rockets NBA Game 2 Western Conference semifinals in Los Angeles


[NBA 심판]

■ NBA 심판의 연봉: 초봉이 10만 달러 수준. 베테랑 심판은 25만 달러 이상의 연봉을 받는다. 플레이오프 경기를 맡는 심판은 수입은 더 높아진다.

■ 심판의 하루: 심판도 선수 못지않게 바쁘다. 경기를 위한 준비를 하기 때문이다. 심판도 선수와 코치처럼 비디오 분석을 한다. 전날 경기가 끝난 직후 경기 내용이 담긴 CD-디스크를 전달받으면 노트북 컴퓨터를 통해 새벽까지 경기를 되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자신이 잘못 판정 내린 것은 없는지를 보는 것이 비디오 리뷰의 핵심이다.

■ 심판도 인간: 농구 경기를 보면 메이크-업 콜과 편향적인 판정이 내려질 때가 있다. 심판은 최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내리려고 하지만 인간인지라 분위기와 감정에 영향을 받게 되어 있다. 예를 들어 홈팀에게 유리한 판정을 내린다든가, 수퍼스타의 공격시 더 휘슬을 자주 불어준다든가, 오심을 한 후에 이를 무마하기 위해 피해를 본 팀에 유리한 판정(make-up call)을 내린다든가 하는 일이 종종 발생하는 것이다.

■ 좋은 심판: 선수들이 플레이를 공격적으로(aggressive) 하도록 유도하면서 거친 플레이(rough)는 못하게 하는 심판이 좋은 심판이다. 툭하면 파울 콜을 부르면서 경기의 흐름을 끊어 놓는 심판은 능력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심판은 따라서 템포를 잘 조절해야 한다. 공격적인 것이 거침(rough)의 선을 넘어서려고 하면 휘슬을 불어 선수들의 감정을 누그러뜨려야 한다. <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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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열전] 르브론 제임스

특집/스포츠 스타 열전 | 2010/01/05 16:57 | Posted by ICCsports 밝은터

USA Basketball Senior National Team Training Day 3

"매직 존슨의 코트 비전과 마이클 조던의 운동 능력을 가진 선수."

2002년 당시 18세의 고교 스타 르브론 제임스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제2의 매직`도 `제2의 조던`도 아닌 두 선수의 장점을 모두 갖춘 선수라니, 과연 그는 어떤 능력의 선수이기에 이런 칭송을 받았던 것일까.

글: 밝은터(ICCsports.com 블로거) 사진: PicApp

천재 농구 스타

2002년 11월 오하이오주 애크론시에 있는 한 고등학교의 졸업반이었던 제임스는 프로농구(NBA) 스타 보다 더 많은 팬을 확보한 천재 농구 소년으로 통했다. 제임스가 다녔던 세인트빈슨트-세인트 매리 고교는 당시 홈경기를 6천명 수용의 대학교 체육관에서 치렀다. 고등학교 체육관은 `르브론 팬`의 3분의 1도 채울 수 없기에 내려진 결정이었다. 대학 체육관으로 옮겨서 홈경기를 치렀음에도 티킷은 거의 매경기 매진됐다.

많은 팬의 요청에 따라 제임스의 경기는 페이-퍼-뷰(Pay-per-view: 유선방송 회당 유료 시청 프로그램)를 통해 오하이오주 케이블 방송 시청자들에게 선보여졌다. 전국 팬들도 르브론에 열광했다. ESPN 방송은 이 같은 제임스의 인기를 감지하고 2002년 12월 1만3천6백석의 대형 체육관에서 열렸던 세인트빈슨트-세인트 매리 고교의 경기를 전국으로 생중계했다.



제임스에 열광했던 이유

 농구 팬들이 18세에 불과한 제임스에 열광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마이클 조던의 전성시절 못지 않은 운동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놀라울 정도의 유연함과 조던을 능가하는 점프력으로 그의 플레이를 보는 이로 하여금 황홀경에 빠지게 했다. 그러면서도 제임스는 이기적이지 않았다. 개인 플레이를 최대한 자제했던 선수다.
 
 그의 코트 전체를 보는 능력 및 패싱능력은 매직 존슨을 연상케 했다. 그렇다면 수비 능력은? 손이 빠르고 센스가 좋아 상대 공격수들을 쉽게 당황케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했다. 공격할 때는 매직 존슨, 조던을 합쳐 놓은 모습이고 수비할 때는 개리 페이튼과 비슷하다고 전문가들은 평했다. 그렇다고 약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자유투 성공률이 낮은 편(당시 60%)이고 파워가 부족했다. 두 가지는 그러나 경험이 쌓이고 나이가 들면서 향상했다.

NBA 인기를 끌어 올릴 스타로 주목 

 제임스는 2003년 고교 졸업 후 NBA 진출을 선언했다. 전체 1번으로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에 지명됐다. 신발 회사들은 그가 프로로 뛰어들면 엄청난 액수로 계약 맺을 준비를 이미 마쳤고 실제 그가 NBA에 진출하자 엄청난 액수의 계약금을 제시했다. 연간 4백만 달러에서 1천만 달러 수준의 다년 계약이 제임스를 유혹했다. 제임스는 이탈리아 프로클럽으로부터 8백만 달러의 연봉을 주겠다는 유혹을 받기도 했다.
 
 조던의 전성기 시절 그의 컴백과 은퇴가 뉴욕 증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것처럼 제임스도 NBA 스타로 자리 잡게 되면 미국 경제를 흔드는 인물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팽배했다.



제2의 조던? No! 제1의 제임스

 제임스는 2001년 캘리포니아주 산타바바라에서 열린 조던 농구 캠프에 NBA 스타, 대학 농구 스타들과 함께 초대된 바 있다. 당시 제임스는 고등학생임에도 뛰어난 실력을 선보이며 선배들을 놀라게 했다. 당시 그의 플레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제2의 조던`이 탄생했다고 외쳤다. 제임스는 이에 대해 "내 목표는 제2의 조던이 되는 것이 아니라 제1의 제임스가 되는 것"이라고 야무지게 말했다.

 물론 조던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제임스는 "조던의 말은 대통령의 말 보다 더 파워가 있다. 나는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으며 조언은 큰 도움이 됐다"고 성숙된 발언을 했다.

 그의 가능성을 감지한 미 주류 언론들은 그가 고등학생이었을 때부터 그에 대한 소개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평생 한 번 표지 모델로 나서기 힘든 잡지인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지는 2002년 2월 `선택된 자(The Chosen One)`라는 표지 제목과 함께 제임스를 표지 모델로 내보냈다. 고교 3학년에 재학중인 농구 선수가 이 잡지의 표지 모델이 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농구판 타이거 우즈 될 것 
 
  당시 제임스의 사인이 포함된 잡지는 e베이에서 200달러에 팔렸다고 한다. 또한 제임스와 관련된 용품이 경품 사이트에서 90가지가 넘게 거래됐다는 후문이다.

 그가 가는 곳이면 마치 유명 영화배우가 뜬 것처럼 경비가 심해졌다. 한 스포츠 칼럼니스트는 "골프가 타이거 우즈의 등장으로 인기 스포츠로 자리 잡았던 것처럼 제임스의 NBA 입성은 농구를 조던 시대 이후 제2의 중흥기로 이끌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농구판의 타이거 우즈가 됐을까. 아직까지는 아니다. 챔피언 반지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제임스는 2003-04시즌에 그럴 가능성을 보여줬다. 고졸 신인치고는 꽤 좋은 성적인 20.9득점, 5.9어시스트, 5.5리바운드를 기록했던 것. 루키 시즌에 20득점-5어시스트-5리바운드를 기록한 선수는 오스카 로벗슨과 마이클 조던 2명뿐이었다. 캐벌리어스는 르브론 제임스 덕분에 이전 시즌보다 18승을 더 올려 35승47패로 시즌을 마감했다. 그러나 플레이오프 진출에는 실패했다.



플레이오프 2년 연속 진출 실패

  두 번째 시즌에 르브론 제임스는 NBA 올스타로 선정됐다. 제임스는 2004-05시즌에 역사상 가장 어린 트리플 더블을 기록한 선수가 됐다. 그리고 NBA 베스트5에 선정됐다. 27.2득점, 7.2어시스트, 7.4리바운드, 2.2스틸이 그의 개인 성적이었다. 42승40패를 기록한 캐벌리어스는 역시 플레이오프 진출을 이루지 못했다. 

■ 특급 대열에 들어가기 시작

 2005-06시즌은 제임스가 마침내 특급 대열에 들어가는 시즌이었다. 
 
 제임스는 2005-06시즌에 31.4득점, 7리바운드, 6.6어시스트를 기록했다. 그러나 황제 즉위식은 연기됐다. 캐벌리어스가 플레이오프에 처음으로(제임스가 유니폼을 입은 후 처음) 진출했지만 챔피언 등극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 시즌에는 캐벌리어스의 선전이 인상적이었다. 
 
 2006 NBA 플레이오프가 시작되기 전, 캐벌리어스는 1라운드 또는 2라운드에서 탈락할 팀으로 평가됐다. 1라운드에서 워싱턴 위저즈에 4승2패로 승리해 2라운드에 진출한 캐벌리어스는 동부 최강이자 리그 전체에서 최고 승률팀인 디트로이트 피스톤스를 만났다.

 전문가들 중 캐벌리어스가 승리할 것이라고 간 큰 예상을 한 사람은 없었다. 피스톤스는 예상대로 1,2차전에서 승리를 거두고 쾌속항진을 하는 듯했다. 캐벌리어스가 3차전에서 승리했지만 여전히 모든 사람들은 '어쩌다 한 번'이라는 생각을 했다. 4차전에서 캐벌리어스가 이겼지만 '원숭이도 나무에서 두 번 떨어질 때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런데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5차전에서 캐벌리어스가 승리하고 시리즈를 3승2패로 앞서 나가자 상황은 당황스럽게 됐다. 캐벌리어스가 컨퍼런스 결승 진출을 목전에 두게 된 것이다. 그러나 캐벌리어스는 남은 2경기를 모두 내주고 아깝게 탈락했다. 

 제임스는 시즌이 끝난 후 캐벌리어스와 연장 계약을 맺었다. 3년 계약에 4년째는 옵션이었다. 2007-08시즌을 시작으로 총 6천만 달러에 달하는 거액의 연장 계약이었다.



■ 가까워진 황제 즉위식

 스몰 포워드인 제임스는 몸이 빠르고 점프력이 좋아 3개 이상의 포지션을 소화해낼 수 있는 NBA 선수다. 그는 파워 포워드의 신체에 포인트 가드의 코트 전체를 보는 감각과 드리블 능력을 지녔다. 제임스는 그러나 2006-07 시즌에 수비에서 문제점을 드러냈다.

 공격에 신경을 많이 쓰다보니 수비 능력이 공격에 비해 떨어진다는 평가가 들렸다. 그는 NBA 최고의 수비팀에 선발된 적이 없었다. 또한 고교 시절부터 문제점이었던 낮은 자유투 성공률(69.8%)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제임스는 이 밖에 나이키와 같은 회사로부터 9천만 달러의 광고 모델 계약금을 받아내 소비자들에 부담을 주는 존재가 되기도 했다. 높은 광고 모델료는 소비자가 부담해야 하는 분담 몫이기 때문이다. 2006-07시즌에 그는 캐벌리어스의 NBA 챔피언 결정전 진출을 이끌었다. 캐벌리어스는 워싱턴 위저즈, 뉴저지 네츠, 디트로이트 피스톤스를 차례로 누르고 결승에 진출했다. 하지만 결승에서 샌안토니오 스퍼스에 4전전패로 패했다. 황제 즉위식이 또 연기된 것이다. 


   
제2의 조던이 아니라 제2의 매직?
 
 캐벌리어스 경기 전담 중계 캐스터인 조 테이트는 오하이오주 비칸 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제임스가 조던의 등번호였던 23번 유니폼을 입고 조던처럼 경기 시작 전에 스코어 테이블에서 송진을 공중으로 날리는 '의식'을 행하지만 그는 조던이 아니다. 제임스는 오히려 매직 존슨과 비슷한 선수다"라고 평가했다.

 매직 존슨과 비슷하다는 것은 모든 분야에서 다재다능하면서도 동료를 믿는 선수라는 의미다. 제임스의 패스능력은 존슨의 그것 못지않다는 게 테이트의 설명. 제임스와 많은 대화를 나눴다는 테이트는 "르브론은 슛을 쏘는 것보다 패스를 잘하는 것을 더 즐긴다. 어린 선수인데도 팀 플레이가 무엇인지 아는 선수다"라고 칭찬했다. 

■ 코비 or 르브론.
 
ESPN-TV는 2008년 3월 '스포츠 센터'에서 재미난 질문을 했다. 2008년 3월 현재 코비 브라이언트, 르브론 제임스 중 한 명을 선택하라고 한다면 누굴 택할 것인가?'라는 질문이었다.

이에 대해 농구 전문가들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이 답을 했는데 모두 코비를 선택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대표적인 내용은 코비가 뛰어난 클러치 슈터인 점과 수비가 더 낫다는 것이었다. 2007년 NBA 챔피언 결정전 때 이런 질문을 했다면 대부분 르브론을 뽑았을 것이다. 당시 르브론은 약체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를 NBA 챔피언 결정전으로 이끌었고 코비의 LA 레이커스는 1라운드에서 탈락한 바 있다.

 플레이오프가 열렸을 때 LA 타임스의 칼럼니스트가 썼던 글에는 "르브론과 코비는 비슷한 수준의 팀에서 뛰는데 르브론은 챔피언십 진출팀을 만들었고 코비는 그렇지 못했다. 르브론이 더 뛰어난 선수다"라는 내용이 있었다. 
 
 당시 23세였던 르브론 제임스는 어디 하나 나무랄 데가 없는 선수였다.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 등에서 모두 뛰어나고 수비도 계속 향상하고 있었다. 코비보다 클러치 슈팅 능력과 수비가 약간 밀리기는 했지만 이는 시간이 흐르면 좋아질 부분이다. 르브론은 야투 성공률도 매년 향상되고 있고 특별히 가로채기와 블락샷이 좋아졌다. 자유투 성공률만 좀 더 높인다면 완벽에 가까운 선수가 될 선수다.




■ 실망스러운 두 시즌

 2007-08시즌에 캐벌리어스는 플레이오프 2라운드에서 보스턴 셀틱스에 3승4패로 아깝게 패했다. 7차전에서 제임스는 40득점 이상을 기록했지만 팀의 승리를 이끌지 못했다. 2008-09시즌에도 캐벌리어스는 동부 컨퍼런스 결승시리즈에서 올랜도 매직에 패해 역시 우승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이 시즌에 제임스는 MVP로 선정됐다. NBA 진출 후 첫 MVP 수상이었다. 그는 또한 올해의 수비팀에 들어가 수비 능력 향상을 공식적으로 인정 받았다.

 제임스는 NBA 신인상(2004년), MVP (2009년), 올스타 선정 5회, 득점왕(2008년), 베스트5 3회, 베스트 수비수 5인(2009년) 등 주요한 상을 모두 받았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챔피언 반지뿐이다.

글: 밝은터

■ 이름: 르브론 제임스
■ 생년월일: 84년 12월30일 생
■ 포지션: 슈팅 가드
■ 키: 6피트7인치
■ 몸무게: 215파운드
■ 태생지: 오하이오주 애크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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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열전] 코비 브라이언트

특집/스포츠 스타 열전 | 2009/12/12 15:10 | Posted by ICCsports 밝은터


17세였던 1996, NBA 드래프트에서 전체 13번으로 샬럿 호네츠( 뉴올리언스 호네츠) 지명된 코비 브라이언트는 지명 직후 레이커스로 트레이드됐다. 제리 웨스트 당시 레이커스 단장은 브라이언트의 장래성을 보고 유고 출신의 블라디 디박(또는 디바치)을 호네츠로 보냈다. 웨스트의 결정은 훌륭했다. 레이커스가 지금까지 세인의 관심을 받을 있었던 이유는 브라이언트의 존재 덕분이다. 브라이언트의 NBA 인생을 '줌인' 보았다.


2 동안 적응기간


브라이언트는
'수퍼스타' 후보였지만 2 동안은 벤치 선수로서 뛰었다. 신인 시즌에 8.2득점을 기록했던 그는 2차 시절에도 8.7득점에 그쳤다. 신인 시즌이었던 1997, 그는 올스타전에서 슬램덩크 챔피언 자리에 등극했다. 화려한 플레이로 팬들의 인기를 한몸에 받은 브라이언트는 1998 올스타전에서 서부 컨퍼런스 주전으로 선발됐다. 그는 NBA 역사상 가장 어린 올스타 주전으로 기록됐다.

 


3년째에 주전 발탁


에디
존스, 엑셀의 백업 가드로 뛰었던 브라이언트는 NBA 진출 번째가 되는 시즌에 주전 자리를 꿰찼다. 레이커스는 존스, 엑셀이 떠난 후라 가드 자리가 비었고 자연스럽게 브라이언트를 주전 가드로 세울 있었다. 오닐-브라이언트 콤비가 레이커스에 챔피언십을 가져줄 것이라는 믿음은 코비의 NBA 생활 3 동안 실현되지 않았다. 1999 플레이오프에서 레이커스는 샌안토니오 스퍼스에 4 전패를 당하고 탈락했다.

 
감독 잭슨


브라이언트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지도자를 꼽는다면 잭슨일 것이다. 잭슨 감독은 1999-2000시즌에 레이커스 감독이 됐다. 시카고 불스를 '왕조' 만들었던 '트라이앵글 오펜스' 들고온 잭슨 감독은 시즌에는 기대를 걸지 않았다. 브라이언트와 오닐은 그러나 생각이 달랐다. 3 동안 꿈을 이루지 못했던 이들은 잭슨 감독 아래서 당장 우승하기를 원했다. 선수의 각오는 남달랐다. 그리고 결과는 잭슨 감독도 놀라워한 우승이었다. 잭슨 감독 부임 시즌에 챔피언 자리에 올랐던 것이다. NBA 4년차였던 브라이언트는 22.5득점, 6.3리바운드, 4.9어시스트로 데뷔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마침내 레이커스의 시대가 열렸다.


 
2인자의 설움?


브라이언트는
매년 성장해 2000-01시즌에는 기량이 절정에 이르렀다. 시즌에 28.5득점, 5.8리바운드, 5어시스트를 기록한 브라이언트는 MVP 있는 개인성적을 냈지만 MVP 없었기에 리그 MVP 선정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레이커스는 잭슨 감독 체제하에서 2 연속 우승을 차지했지만 브라이언트와 오닐의 자존심 싸움이 시작됐다. 레이커스는 2001-02시즌에도 챔피언이 레이커스는 3 연속 우승의 금자탑을 세웠다. 브라이언트는 그러나 여전히 2인자였다.

 
왕조의 ?


브라이언트의
기량은 더욱 향상됐다. 2002-03시즌에 그는 평균 30득점을 기록했다. 그리고 그는 9경기 연속 40득점+ 기록했다. 2003 2 동안 브라이언트의 평균 득점은 40.6득점이었다. 브라이언트가 떴지만 레이커스는 4연패를 이루지 못했다. 서부 컨퍼런스 준결승 시리즈에서 스퍼스에 24패로 무릎을 꿇었던 . LA 언론은 "브라이언트가 잘하는 것은 레이커스에 독약"이라는 식으로 모든 책임을 브라이언트에 떠넘겼다.

 


성폭행 사건에 연루


브라이언트는
2003-04시즌이 시작하기 성폭행 사건에 연루됐다. 전국 언론은 소식을 연일 중계방송 하듯이 전했다. 농구 팬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던 브라이언트는 사건으로 이미지가 추락했다. 깨끗한 이미지는 완전히 사라졌다. 브라이언트와 오닐의 신경전은 사건으로 더욱 첨예해졌다. 브라이언트는 자신이 성폭행 고소를 당해 고통을 받고 있을 오닐이 전화 하지 않았다고 분개했다.

코비는 트레이닝 캠프가 시작하기 잭슨 감독에게 "오닐이 언론에서 나에 대해 좋은 소리를 하면 나도 가만히 있지 않겠다" 통보했다. 코비와 친했던 트레이너인 개리 비티는 오닐에 접근하지 못했고 오닐과 친했던 셰이퍼 트레이너는 코비의 테이핑을 돕지 못했을 정도로 선수는 앙숙이었다. 또한 어떤 기자가 오닐과 친하면 그는 브라이언트와 인터뷰를 없었다. 레이커스는 개리 페이튼, 말론을 영입하고도 선수의 감정싸움으로 인해 NBA 챔피언 결정전 진출에 만족해야 했다.

 


모두 떠나고 홀로 남아


혼란스러운
시즌이 끝나고 오닐은 마이애미로 트레이드됐다. 그리고 잭슨 감독도 떠났다. 잭슨 감독은 떠나면서 코비를 비난한 내용을 실은 '마지막 시즌'이라는 책을 발간했다. 책에는 잭슨 감독의 코비를 향한 애증이 드러났다. 잭슨 감독의 빈자리를 루디 탐자노비치가 채웠지만 그는 시즌 중에 돌연 사임했다. 혼란이 이어졌고 레이커스는 리그의 웃음거리가 됐다. 코비는 1인자가 됐지만 아무도 그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레이커스가 계속 헤매자 잭슨 감독은 2005-06시즌에 다시 LA 돌아왔다. 시즌에 코비는 무려 35.4득점, 5.3리바운드, 4.5어시스트를 기록했는데 '범죄자' '이기주의자' 이미지가 강한 그를 MVP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잭슨과 함께 레이커스 재건


잭슨
감독 재부임 2년은 평범한 시즌이었다. 레이커스는 2 연속 플레이오프에서 피닉스 선스에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2007-08시즌이 시작하면서 코비는 ' 플레이어' 됐다. 앤드류 바이넘이 급성장하고 파우 가솔을 영입하자 코비를 중심으로 레이커스는 서부 최강이 됐다. 코비는 데뷔 줄곧 레이커스 유니폼만 입었다. 그의 영욕의 세월은 다른 사람의 인생과 크게 다르다. 독특한 인생을 보낸 그가 생애 MVP 트로피를 받게 됐다. 2007-08시즌에 코비는 MVP로 선정됐고 레이커스는 오랜만에 서부 컨퍼런스 챔피언 자리에 등극했다. 레이커스는 그러나 결승에서 보스턴 셀틱스에 완패했다.

코비 중심의 왕조

코비와 레이커스는 2008-09시즌에 그야말로 승승장구했다. 레이커스는 시즌을 65승17패의 뛰어난 성적으로 마쳤고 코비는 MVP 투표에서 르브론 제임스(클리블랜드)에 이은 2위에 올랐다. 레이커스는 유타 재즈, 휴스턴 로키츠, 덴버 너기츠를 차례로 누르고 NBA 챔피언 결정전에 진출했고 결승에서 올랜도 매직을 눌러 실로 오랜만에 NBA 챔피언이 됐다. 브라이언트는 NBA 챔프 결정전 MVP로 뽑혔다. 이는 코비의 네 번째 챔피언 등극이었고 오닐이 떠난 후 첫 번째 챔피언십이었다.

[글/블로그 ICCsports.com의 밝은터 사진/ICCsport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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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 잭슨 감독 특집(5)-2008년 이야기

연재/필 잭슨 | 2009/06/22 22:09 | Posted by ICCsports 밝은터


필 잭슨
LA 레이커스 감독이 통산 10번째 챔피언 반지를 받게 됐다. 이는 실로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 감독이 미국 메이저 스포츠에서 10회 우승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금자탑을 세운 것이나 다름 없다. 필자는 지난 2005년부터 잭슨 감독에 관해 쓴 글을 정리해보았다.

Magic vs Lakers


s
2008219: NBA 시즌 전반부에 3517패를 기록한 LA 레이커스는 후반부에 20-25승 추가를 목표로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필 잭슨 레이커스 감독은 서부 컨퍼런스에서 4위 이내에 들으려면 20-25승이 필요함을 LA 지역 언론 기자들과의 기자회견에서 밝혔다. 레이커스는 앞으로 30경기를 남겨두고 있다. 20-25승은 가능한 승수일까? 잭슨 감독은 긍정적으로 말했다.

최고의 공격력을 자랑하기 때문에
20-25승은 어려운 일이 아닌 것으로 그는 믿고 있다. 잭슨 감독은 LA 지역 언론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선수들의 태도가 마음에 든다."라고 말했다. 까다로운 잭슨 감독이 한 말이기 때문에 극찬이라고 할 수 있다. 잭슨 감독은 "우리는 팀을 만들어가고 있고 선수들은 성장하고 있다. 그들이 발전하는 모습을 보면 흥미롭다."라고 덧붙였다.

잭슨 감독은 "레이커스의 공격은 완벽한 수준"이라고 말하면서 특별히 3점슈터들이 늘어나면서 상대 수비수들을 외곽으로 끌어내고 동료에게 더 좋은 공격 기회를 줄 수 있는 것이 최대 장점이라고 말했다. 레이커스가 가장 필요했던 부분이 채워진 것이다. 그러나 수비에서는 여전히 수정해야 할 부분이 많다고 잭슨 감독은 지적했다.

NBA: MAR 31 Knicks at Nuggets


s2008220: 선스 팬들은 '안티 코비'로 악명 높다. 레이커스 팬들은 선스 유니폼을 입은 샤킬 오닐을 싫어한다. 최근 필 잭슨 감독은 오닐에 대해 비아냥거리는 듯한 발언을 해 오닐의 감정을 자극했다. 여기에 오닐과 코비의 자존심 싸움에 대한 앙금은 여전히 남아 있다. 감독들의 자존심 싸움도 대단하다. 지난해 112 LA 레이커스가 피닉스 선스를 119-99로 대파한 날에 두 감독의 감정이 폭발했다. 경기 종료 445초를 남기고 레이커스가 111-81로 앞선 상황에서 마이크 댄토니(위 사진) 선스 감독이 타임아웃을 불렀는데 작전회의가 끝나고 선스 선수들이 코트에 들어서려 하자 이번엔 필 잭슨 감독이 타임아웃을 불러 댄토니를 화나게 했다.

이에 댄토니는 잭슨을 향해 "너가 그렇게 대단한 감독이야? 네 맘대로 해!"라며 화를 냈다. 벤치에 앉아있던 잭슨도 "입 다물고 자리에 가서 앉아!"라고 맞받아쳤다.


s
2008 225: 레이커스의 필 잭슨 감독은 부야치치(아래 사진)를 '정오의 슈터'로 불렀다. 아침 연습 때에는 3점슛을 던지면 백발백중인데 저녁 경기만 시작하면 공이 림 안으로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었다. 부야치치는 이제 더는 '정오의 슈터'로 불리지 않는다. 밤이 되어도 슛이 정확해졌다. 부야치치는 특히 중요한 순간에 한 방을 잘 터뜨린다. 코비 브라이언트는 "그는 원래 슛이 정확했다. 이제 그것이 결과로 나타나니 자신감이 생겼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야치치도 이를 인정했다. 그는 "이제는 실수 한 번 했다고 감독이 나를 벤치로 부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제는 실수해도 당장 만회를 할 것이라는 믿음이 코칭 스태프에 생겼다고 한다.

NBA 2009: Lakers Beat Jazz 113-100


s2008 227: 과거 코비의 MVP 후보론에 대해 심드렁한 반응을 보였던 필 잭슨 레이커스 감독도 "당연히 코비는 MVP 후보다."라고 말했다. "당연히(definitely)"라는 표현이 강하게 느껴진다. 잭슨 감독은 "코비는 동료를 더 좋은 선수로 만드는 리더가 됐다."라고 극찬했다. 농구 시즌이 종반을 향해 달려가면서 MVP 수상 후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가운데 전문가들은 르브론 제임스(클리블랜드)와 케빈 가넷(보스턴 셀틱스)을 수상 후보로 올려놓았다. 잭슨 감독은 "두 선수 모두 MVP 수상 자격이 있다. 코비도 유력한 수상 후보로 여겨져야 한다."라고 말했다.(실제 감독의 안수(?)를 받은 코비는 이 시즌에 MVP로 선정됐다.)


s
2008421: NBA의 명문 구단인 레이커스는 1988년 이후 단 한 번도 NBA 챔피언이 되지 못했다. 90년대에는 서부에서도 명함을 내밀지 못했다. 오랜 시간 우승 가뭄에 시달렸기 때문인지 2000 NBA 챔피언 우승의 순간은 잊을 수 없다. 필 잭슨 전 시카고 불스 감독을 영입한 레이커스는 정규 시즌에 6715패를 기록하더니 NBA 챔피언이 됐다. 레이커스는 서부 컨퍼런스 결승 시리즈 7차전(대 포틀랜드 전)에서 15점차로 뒤져 패색이 짙었으나 경기 막판 대역전에 성공해 결국 43패로 승리했다. 이 경기에서 코비 브라이언트가 샤킬 오닐에게 공중 패스한 것을 오닐이 슬램덩크로 연결한 장면은 하일라이트였다.

Sports News - February 16, 2009


s
200855 (코비가 MVP로 선정된 후): 코비 브라이언트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지도자를 꼽는다면 역시 필 잭슨일 것이다. 잭슨 감독은 1999-2000시즌에 레이커스 감독이 됐다. 시카고 불스를 '왕조'로 만들었던 '트라이앵글 오펜스'를 들고온 잭슨 감독은 첫 시즌에는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브라이언트와 오닐은 그러나 생각이 달랐다. 3년 동안 꿈을 이루지 못했던 이들은 잭슨 감독 아래서 당장 우승하기를 원했다. 이 두 선수의 각오는 남달랐다. 그리고 결과는 잭슨 감독도 놀라워한 우승이었다.
잭슨 감독 부임 후 첫 시즌에 챔피언 자리에 올랐던 것이다
. NBA 4년차였던 브라이언트는 22.5득점, 6.3리바운드, 4.9어시스트로 데뷔 후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드디어 레이커스의 시대가 열렸다. s2008520 (서부 컨퍼런스 결승 시리즈를 앞두고): 양팀 모두 경험이 풍부하고 챔피언 경력이 화려한 감독이 지휘한다. 지금까지 총 9개의 챔피언 반지를 받은 필 잭슨 레이커스 감독과 4개의 챔피언 반지를 보유한 그렉 포포비치 스퍼스 감독의 머리싸움은 흥미롭다.

두 감독은 많은 챔피언 반지를 받았음에도 그만큼 인정되지 못하는 점이 비슷하다. 잭슨 감독은 마이클 조던 덕분에 반지 6개 그리고 샤킬 오닐, 코비 브라이언트 덕붕에 반지 3개를 받았다는 이미지를 여전히 갖고 있고 포포비치는 우승을 차지한 후 다음 시즌에 성적이 좋지 않은 점에 대해 리더십 문제를 지적받았다. 그러나 두 감독은 모든 면에서 뛰어나다. NBA와 같은 세계적인 리그에서 운이 좋아 챔피언 반지를 많이 받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최고 감독간의 머리싸움, 벌써 기대가 된다.

NBA: DEC 16 Knicks at Lakers


s2008 523: LA 레이커스의 필 잭슨 감독은 샌안토니오 스퍼스의 핵심 선수인 팀 던컨을 방어하는 데 있어 색다른 방법을 썼다. 1차전에서 잭슨 감독은 1-3쿼터에 던컨을 더블팀으로 묶어두지 않았다. 던컨은 1-3쿼터에 좋은 활약을 펼쳤다. 그런데 4쿼터에서 그는 무너졌다. 이유는 잭슨 감독이 4쿼터에 던컨을 이중 방어로 막게 했기 때문이다. 가드들이 협력 수비로 던컨의 공격을 교란했다. 던컨은 어떤 수비가 나올지 몰라 당황해 했다. 레이커스가 앞으로 경기에서 스퍼스의 공격을 제한하려면 던컨을 효과적으로 막아야 한다. 1차전의 작전이 다른 경기에서도 통할까. 잭슨 감독이 던컨을 방어하고자 어떤 작전을 들고 나올지 관심이 쏠린다. 또 어떤 특이한 수비 방법을 고안해낼까.

Red & Russell
Red & Russell by Lorianne DiSabato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s200862:

필 잭슨
vs. 레드 아워박.

 LA 레이커스와 보스턴 셀틱스의 NBA 챔피언 결정전은 빅스타들이 대거 등장하는 대형 쇼다. 레이커스에는 코비 브라이언트, 파우 가솔, 라마 오덤이 뛰고 있고, 셀틱스에는 '3'로 불리는 케빈 가넷, 폴 피어스, 레이 앨런이 있다. 레이커스에는 또한 생애 10번째 챔피언 반지를 노리는 필 잭슨 감독이 있다.

 여러 인물 중 가장 시선을 끄는 사람은 역시 코비와 필 잭슨 감독이다. 코비는 '2의 마이클 조던'으로 오랫동안 불렸지만 샤킬 오닐의 빛에 가려 무늬만 '2의 조던'이었다. 그의 나이 이제 29. 만약 이번에 챔피언 반지를 추가한다면 그는 생애 4번째 챔피언 반지를 챙기게 된다. 조던이 29세 때 받았던 챔피언 반지 수는 2개에 불과했다. 만약 레이커스가 이러한 추세를 계속 이어간다면 코비는 조던이 받았던 챔피언 링 6개보다 더 많은 반지를 챙길 수 있다.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코비는 조던을 넘어서는 위대한 선수가 될 수 있을까. 레이커스의 감독인 필 잭슨은 10번째 반지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그는
60년대에 보스턴 셀틱스에서 무려 9개의 챔프 반지를 챙겼던 레드 아워박을 넘어서게 된다. 잭슨 감독은 아워박을 넘어서는 위대한 감독으로 평가될까

 
잭슨 감독은 역대 최다 챔피언 반지 기록 경신에 나섰다. 그의 라이벌은 이미 은퇴하고 세상을 떠난 아워박이다. 아워박은 살아 있을 때 잭슨 감독을 여러 차례 깎아내린 바 있다. 아워박은 "조던, 스카티 피펜, 코비 브라이언트, 샤킬 오닐을 데리고 우승하지 못할 감독이 어디 있는가"라며 자주 비아냥거린 바 있다. 그런데 이는 아워박 자신도 60년대 셀틱스를 지휘하던 시절 5명 이상의 명예의 전당행 선수를 보유하고 있었음을 간과한 발언이었다. 아워박은 이에 대해 "그들은 내가 키운 선수다"라고 반박한 바 있다.

 잭슨 감독 밑에서 챔피언 반지 3개를 받았던 레이커스의 가드 데릭 피셔는 "잭슨 감독이 운이 좋아 9개의 챔피언 반지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그는 존경을 받을만한 감독이다."라고 말했다. ESPN라디오 해설가인 잭 램지 박사도 "잭슨 감독이 젠체하고 냉정하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그가 코치로서 능력이 없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라고 말했다. 시즌 중 레이커스에 합류한 포워드 파우 가솔은 "잭슨 감독은 영적이면서 지적이다. 그에게서 너무나 배울 게 많다."라고 극찬했다.

 레이커스가 셀틱스와의 시리즈에서 승리해 생애 10번째 챔피언 반지를 받는다면 셀틱스의 전설 아워박의 기록을 경신하게 된다. 셀틱스 팬들은 따라서 "아워박을 위해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라고 외친다.

 잭슨 감독이 10번째 챔피언 반지를 받으면 누가 최고의 감독인가에 관한 논쟁이 끝날 것으로 보인다. 한 농구 칼럼니스트는 "60년대의 챔피언 반지와 지금의 챔피언 반지는 그 가치 면에서 크게 다르다. 90년대와 2000년대에 챔피언 반지 10개를 받는다면 잭슨과 아워박 중 누가 더 위대한 감독인가에 대한 논쟁이 끝나게 된다"라고 말했다.


tex winter
tex winter by donielle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s2008 65: 60년대와 70년대에 뉴욕 닉스와 뉴저지 네츠에서 뛰었던 필 잭슨 감독은 은퇴 후 하부리그인 CBA에서 코치 수업을 받았다. CBA에서 코치가 된 첫해, 챔피언 등극을 이끌었던 잭슨 감독은 이후 NBA 진출을 노렸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이유는 NBA 구단주들이 그를 '반체제문화'에 동조하는 인물로 낙인찍었기 때문이었다. 잭슨 감독이 CBA에서 코치로 활동하다가 NBA로 오게 된 해는 1987년이었다. 시카고 불스의 어시스턴트 코치가 된 잭슨 감독은 1989년 이 팀의 감독으로 승격됐다. 그리고 1998년까지 이 팀의 감독으로 활약하며 6개의 챔피언 반지를 받았다. 잭슨 감독은 불스에서 텍스 윈터 코치를 만났다. 윈터 코치는 '트라이앵글 오펜스'를 고안해낸 인물이다.

 잭슨을 싫어했던 사람들은 그가 마이클 조던 덕분에 챔피언 반지 6개를 받았다고 했지만 그의 리더십을 잘 모르고 하는 소리였다. 잭슨 감독이 불스에서 세운 팀 친화력은 놀라운 수준이었다. 선수들과 감독의 상호 존중하는 분위기는 '왕조'를 세울 수 있도록 했다. 왕조를 무너뜨린 인물은 다름 아닌 제리 크라우스 불스 단장이었다. 크라우스 단장은 잭슨 감독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을 거북하게 생각했고 그를 계속 견제했다. 팀 플로이드를 차기 감독으로 세운 크라우스는 결국 왕조가 몰락하는 원인 제공자가 됐다.

 1년을 쉬게 된 잭슨 감독은 1999 LA 레이커스의 감독이 됐다. 연봉과 조건 면에서 불스 시절과는 완전히 다른 파격적인 대우로 '라라 랜드'로 오게 된 잭슨 감독은 부임했던 시즌을 포함해 3년 연속 챔피언 등극을 이끌었다. 이전 감독들은 샤킬 오닐, 코비 브라이언트를 데리고 NBA 챔피언 결정전에도 진출하지 못했는데 같은 선수들을 데리고 그는 3회 연속 우승이라는 금자탑을 세웠다.

 잭슨 감독은 팀 친화력을 만드는 데 뛰어난 지도자이면서 상대팀 그리고 심판들과의 심리전에서 고도의 전략으로 소속팀이 유리하게 이끌었다. 선수들에게 동기유발을 이끄는 능력도 뛰어난 잭슨 감독은 이 시대 최고의 감독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운이 좋아도, 아무리 좋은 선수를 데리고 있어도 10회 우승은 도저히 이루기 힘든 놀라운 일이다. 전 뉴욕 양키스 감독이었던 조 토리( LA 다저스)가 좋은 선수들을 많이 데리고 있었지만 우승횟수는 4회였다. 여전히 그는 위대한 감독으로 불린다. 수퍼스타들로 라인업을 꾸몄던 감독도 4회 우승으로 극찬을 받았는데 잭슨 감독의 9회 우승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10회 우승을 이룬다면 그는 전설적인 감독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전설을 보고 있다.

NBA Finals Game 6: Los Angeles Lakers v Boston Celtics


s2008 613 (NBA 챔피언 결정전에서 셀틱스에 패한 후): 감독의 머리싸움에서도 닥 리버스(사진 위)가 좀 더 나아 보였다. 리버스는 선수들에게 동기유발을 하는 말을 자주 하면서 격려했고 수비를 강조하면서 레이커스의 공격 흐름을 흩어놓았다. 레이커스의 '명장' 필 잭슨 감독은 4차전에서 20점차 리드를 지키지 못한 책임을 져야 했다. 그는 점수차가 좁혀졌음에도 타임아웃을 부르지 않고 셀틱스의 빠른 추격을 지켜보기만 했다. 이는 잭슨 감독이 오랫동안 가졌던 농구 철학이기에 비난할 수 없지만 황당하게 역전패를 당할 때 팬들은 아쉬움을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 잭슨 감독은 '어려운 상황에서는 선수들이 경기 흐름을 이해하고 선수들이 그 흐름을 조절해야 한다.'라는 독특한 농구 철학의 소유자다. 때로는 이러한 방식이 도움될 때가 있어 그 누구도 이를 바꾸라고 말을 할 수도 없다. [시리즈 끝]


2009/06/23 - [특집] - 필 잭슨 감독 특집(4)-2007년 이야기
2009/06/19 - [특집] - 필 잭슨 감독 특집(3)-2006년 이야기
2009/06/19 - [특집] - 필 잭슨 감독 특집(2)-2005년 이야기
2009/06/18 - [특집] - 필 잭슨 감독 특집(1)-트라이앵글 오펜스란
2009/05/26 - [북리뷰] 필 잭슨이 쓴 'The Last Sea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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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 잭슨 감독 특집(4)-2007년 이야기

연재/필 잭슨 | 2009/06/22 21:14 | Posted by ICCsports 밝은터


필 잭슨
LA 레이커스 감독이 통산 10번째 챔피언 반지를 받게 됐다. 이는 실로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 감독이 미국 메이저 스포츠에서 10회 우승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금자탑을 세운 것이나 다름 없다. 필자는 지난 2005년부터 필자가 잭슨 감독에 관해 쓴 글을 정리해보았다.


NBA: NOV 23 Kings at Lakers

s200721:  레이커스는 (2007 2월 당시) 10경기에서 55패로 부진했지만 시즌 성적은 2818패로 아주 좋았다. 이는 서부 컨퍼런스 10위권의 팀이라는 미국 언론 농구 전문가들의 평가에 비춰볼 때 예상을 뛰어넘는 성적이다. 사실 레이커스의 당시 선수들을 보면 10위권 팀이라는 객관적 예상이 맞았다. 6위 팀은 아니었다. 예상 외로 4단계 차이가 나는 것은 역시 필 잭슨 감독의 지도력 덕분이었다고 할 수 있다.

s200745: 레이커스의 필 잭슨 감독은 코비 브라이언트가 고득점 행진을 했을 당시 '코비-'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코비-다는 '코비' '레이다'의 합성어로 레이커스 선수들이 코비를 레이다의 중심으로 놓는 것을 비꼬는 듯한 잭슨 감독식의 표현이었다. 즉 선수들이 슛을 던질 생각은 하지 않고 코비에게만 패스하려는 경향을 지적한 것이었다. 잭슨 감독은 코비가 팔꿈치 가격으로 '더티 플레이어'라는 이미지가 굳어지자 이를 바꾸기 위한 시도를 한 것으로 고득점 행진을 풀이했다. 코비는 그러나 자신의 개인 홈페이지에서 "내가 원하는 것은 승리뿐"이라며 '승리'에 대한 욕심을 여러 차례 강조한 바 있다. 승리를 위해서라면 슛을 양보할 수도 소나기 슛을 쏠 수도 있다고 그는 말했다.


NBA: JUN 17 Lakers 2009 Championship Rally

s200749:  크리스 보시(당시 23세. 아래 사진)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랩터스의 파워포워드인 6피트10인치(208cm)의 보시는 2006 7월 랩터스와 3년 연장 계약(4년째는 옵션)을 맺고 이 팀의 리더가 됐다. 연장 계약을 맺기 전 LA 레이커스의 필 잭슨 감독은 보시를 공개석상에서 극찬하며 추파를 던진 바 있다. 이 발언으로 잭슨 감독은 NBA 사무국으로부터 벌금령을 받았다. 보시와 같은 믿을만한 장신 선수가 필요했던 잭슨 감독의 발언이 나온 후 랩터스는 곧바로 연장 계약을 통해 보시에 4년 동안 약 65백만 달러를 주기로 약속했다.


NBA: NOV 30 Raptors at Lakers


s2007430:  90년대 마이클 조던, 스카티 피펜, 필 잭슨 트리오가 이끌었던 불스는 그야말로 '무적함대'였다. 무려 6차례나 챔피언이 됐으니 상세한 설명이 필요 없다. 조던이 두 차례 은퇴를 하지 않았더라면 불스는 10년 동안 8-9회의 우승도 가능했을 팀이다. 조던이 은퇴하고 잭슨 감독이 떠난 후 피펜도 휴스턴 로키츠로 가면서 불스는 '무적함대'에서 '나룻배'로 전락했는데 리그의 조롱거리가 됐던 불스는 1998-99시즌부터 2003-04시즌까지 119341패라는 놀라운(?) 성적을 냈다.

s2007530:  넘버2가 필요해. '포스트 샤크(Post-Shaq) LA 레이커스는 NBA에서 가장 뛰어난 선수인 코비 브라이언트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팀이다. 여기에 NBA 챔피언 반지 9개를 받은 필 잭슨 감독과 그 사단이 코칭 스태프로 있다. 그렇다면 레이커스는 왜 시카고 불스와 같은 '왕조'를 탄생시키지 못하는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레이커스에는 조던급 선수는 있어도 스카티 피펜, 존 팩슨, 스티브 커와 같은 선수들이 없기 때문이다.

s2007 528: 마이클 조던이 '농구 황제'가 되기까지 그의 옆에는 필 잭슨 감독이 있었다. 르브론 제임스도 자신의 필 잭슨을 찾았다. 바로 마이크 브라운(당시 37세. 아래 사진) 감독이다. 1970년생인 브라운 감독은 NBA에서 두 번째로 젊은 감독이다. 나이가 더 어린 감독은 뉴저지 네츠의 로렌스 프랭크로 같은 1970년생이지만 브라운보다 몇 개월 먼저 태어나 최연소 감독이 됐다. 브라운은 캐벌리어스가 '정제된 팀'이 되도록 한 지도자다. 젊은 선수들이 중심인 캐벌리어스가 올해 동부 컨퍼런스 결승 시리즈에 진출한 이유는 브라운이 강조한 수비와 리바운드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필 잭슨과 지도 스타일이 비슷하다.   


NBA: Houston vs Cleveland Dec 23


s2007926: 과연 바이넘은 꾸준히 기여하는 센터가 될 수 있을까. 필 잭슨 레이커스 감독은 바이넘이 평균 15득점, 10리바운드를 기록하는 선수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렇게 된다면 코비 브라이언트도 불만을 터뜨릴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라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보인다. 브라이언트는 시즌 중에 트레이드를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s20071031: 성폭행 사건에 연루됐을 때도 없었던 야유를 코비 브라이언트가 들었다. 브라이언트(29. LA 레이커스) 30일 열렸던 2007-08시즌 개막전 휴스턴 로키츠 전에서 팬들에게 소개되자 야유의 소리를 들었다. 스테이플스 센터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필 잭슨 감독도 깜짝 놀랐다. "이게 코비한테 하는 야유 맞나?"라고 코치에게 물어봤다고 한다.  팬들이 바보가 아님을 보여준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여름 내내 레이커스를 떠나고 싶다는 보도를 들었던 팬들은 더는 '조건 없는 사랑'을 보낼 수 없게 됐다. 물론 경기가 시작되고 코비가 맹활약하자 "MVP!" "~, ~"의 외침이 있었지만 팬들의 마음은 이전 같지 않았다.

s2007115: 챈들러는 필 잭슨 LA 레이커스 감독이 극찬하는 선수다. 잭슨 감독은 레이커스 선수들에게 챈들러의 리바운드하는 자세 및 움직임을 필름을 통해 체크하라고 강조한다고 한다. 챈들러는 열정이 넘치는 장신 선수로 라시드 월러스급의 선수가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NBA: APR 27 Western Conference Quarterfinals - Nuggets at Hornets - Game 4


s20071119: LA 레이커스는 2006 NBA 신인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26번으로 파마를 지명했다. 당시 미치 컵첵 레이커스 단장은 "파마가 1라운드 26번까지 내려올 줄은 몰랐다"며 계획에 없는 지명이었음을 밝혔다. NBA 전문가들은 파마가 전체 20번 이내로 지명될 줄 알았고 레이커스가 그를 선택할 기회는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필 잭슨 레이커스 감독은 신인을 잘 기용하지 않기 때문에 파마는 신인 시즌을 평범하게 보냈다. 파마는 그래도 경기 평균 15분을 뛰었는데 잭슨 감독으로서는 신인에게 상당히 많은 출전시간을 줬다고 할 수 있다

s20071212: 무명의 기간을 거쳐 NBA 스타가 된 선수 중 대표적인 인물은 벤 월러스(시카고 불스). 그는 대학 농구 2부리그에 속했던 버지니아 유니온 출신으로 대학을 나와 드래프트에서 지명되지 못해 이탈리아 프로리그에서 잠시 뛰었다. 2007년 현재 월러스는 NBA 최고의 빅맨 중 한 명이다. 뉴저지 네츠의 대럴 암스트롱도 철저한 무명이었다가 뒤늦게 NBA에 합류해 이름을 날린 선수다. 암스트롱도 마이너리그와 유럽 리그를 거쳐 NBA에 입문할 수 있었다. 이 밖에 팀 레글러, 잔 스탁스, 라자 벨, 스티븐 잭슨, 스무시 파커, 앤소니 파커 등이 일종의 마이너리그였던 CBA를 거쳐서 NBA에 입문했던 선수들이고 필 잭슨, 플립 선더스, 조지 칼, 짐 베이하임 등 명장들은 CBA에서 감독 수업을 받은 바 있다.

Lakers celebrate 15th NBA championship with a parade in Los Ange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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