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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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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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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밝은터(ICCsports.com 블로거) 사진: Flickr, PicA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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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050701125303.tif.jpg by DavidGiard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디트로이트 피스톤스 하면 생각나는 것은 ‘배드 보이스
(Bad Boys)’라는 별명이다. 80년대에 아이제이아 토마스, 빌 레임비어, 데니스 로드맨, 조 듀마스는 ‘악동’으로 명성을 떨쳤고 ‘배드 보이스'라는 별명이 자연스럽게 따라 다녔다.

 

피스톤스는 그러나 90년대 중반 코트의 신사 그랜트 힐을 중심으로 팀을 구성하면서 ‘굿 보이스(Good Boys)'가 됐고 이는 저조한 팀 성적 및 인기 하락의 원인이 됐다. 2001-02년 시즌이 시작되기 전 릭 칼라일을 영입하면서 ’짠물 수비‘를 갖추게 된 피스톤스는 2년 연속 디비전 챔피언에 오르는 등 가파른 상승세를 탔다.

 

피스톤스는 얼마 후 칼라일을 해고하고 명장 래리 브라운을 데려와 단단한 팀워크로 1990년 이후 14년 만에 NBA 챔피언 결정전 진출해 LA 레이커스를 누르고 챔피언이 됐다. 피스톤스에 대해 알아보았다.

 

Detroit, Michigan and Army Parade with a Marching Band with the Hudson Department Store in the Background.
Detroit, Michigan and Army Parade with a Marching Band with the Hudson Department Store in the Background. by David C. Foster 저작자 표시변경 금지

디트로이트라는 도시: 미시건주 오대호 연안에 있는 디트로이트(Detroit)하면 떠올리는 것은 역시 자동차다. 자동차 업계의 빅3 GM, 포드, 크라이슬러의 본사가 디트로이트에 있다. 1986년 헨리 포드가 최초로 자동차를 만든 도시가 디트로이트다. 이 도시는 1701년 프랑스 무역업자 앙투안 드 라 모트 카디야크가 세웠는데 De Troit(‘해협의’라는 의미의 프랑스어로 ‘드트르와’로 발음)가 오늘날의 디트로이트가 됐다.

 

디트로이트 시민: 자동차 산업의 시발지이다 보니 자동차 부품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많은 도시다. 따라서 이 도시에서는 노동 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됐다. NBA팀인 피스톤스를 이야기할 때 ‘블루 칼라’라는 이야기를 자주 하는 것도 도시의 이런 분위기에 기인한다. 노동 운동의 정신이 베어 있어서인지 농구팬들은 상당히 적극적이다. 신사적인 것보다는 거친 플레이를 선호한다. 과거 인디애나 페이서스의 원정경기에 상당수의 디트로이트 팬들이 원정 응원을 가 “(우리는 못 했지만 너희는) LA를 눌러라(Beat LA!)"고 외친 것을 보면 ‘터프함’이 어느 정도인지 감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피스톤스의 역사: 자동차 피스톤을 제작하는 회사의 사장인 프레드 졸너(Zollner)가 창단한 팀인 피스톤스는 처음에는 인디애나주 포트웨인을 근거지로 했다. 1957년 디트로이트로 근거지를 옮겼는데 여전히 지역 분위기에 맞아 피스톤스라는 닉네임을 그대로 사용했다. 피스톤스는 1949 NBA에 합류한 이후 NBA에서 챔피언 등극 2, 컨퍼런스 우승 6회의 괜찮은 성적을 냈다. 피스톤스 구단의 절정기는 ‘배드 보이스’가 활약했던 80년대 후반이다. 당시 2년 연속 우승의 금자탑을 세웠다.

 

피스톤스에서 등번호 영구결번 한 인물은 척 데일리(2), 조 듀마스(4), 아이제이아 토마스(11), 비니 존슨(15), 밥 레이니어(16), 데이브 빙(21), 빌 레임비어(40) 등이다.

 

Chuck Daly Coach of the Detroit Pistins

 최고의 감독 척 데일리
데일리는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원조 드림팀의 감독이었다. 당시 원조 드림팀에는 마이클 조던, 매직 존슨, 래리 버드, 패트릭 유잉, 말론, 데이비드 로빈슨, 스카티 피펜 수퍼스타가 모두 출전해 세계적인 관심을 있다. 그런 팀의 감독이었다는 것은 그만큼 데일리 감독의 리더십이 출중함을 의미한다.

잭슨 레이커스 감독은 데일리는 항상 친절을 베푼 지도자였다 회상했다. 물론 감독은 한때 앙숙 관계였다. 잭슨이 시카고 불스 감독이었던 시절, 데일리는 디트로이트 피스톤스의 감독이었다. 80년대에 팀의 라이벌 대결은 대단했다. ‘배드 보이스 불렸던 피스톤스는 조던의 불스에 거친 플레이를 펼치며 승리를 가져갔고 80년대에 NBA 챔피언 자리에 차례나 올랐다. 조던의 불스는 배드 보이스때문에 번번이 탈락의 고배를 마셨던 것이다. 데일리는 피스톤스 선수들에게 항상 거친 플레이 강조했다.

통산 성적 638437패를 자랑하는 데일리는 1996 NBA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감독 10인에 뽑히기도 했다. 데니스 로드맨도 데일리 밑에서는 순한 양처럼 행동했다. 어떤 이는 그를 두고 “’배드 보이스 함께 있었던 굿 가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어떤 이는 데일리가 다루지 못하는 선수는 없었다 말하기도 했다.

화려한 농구 인생과 친구들을 뒤로 하고 그는 2009 타계했다.

 

12th Annual ESPY Awards - Show

최고의 감독 래리 브라운

래리 브라운은 ‘플레이오프 진출 전문 감독’으로 유명하다. , 하위권의 팀을 강팀으로 만드는 전문가로 통했다. 덴버 너기츠, 샌안토니오 스퍼스, LA 클리퍼스, 인디애나 페이서스, 필라델피아 76ers 등을 거치며 이 팀들을 모두 플레이오프에 진출시켰다. 그는 ‘90년대 동네북’이었던 76ers 2001 NBA 챔피언 결정전에 올려놓기도 했다. 리그의 웃음거리였던 클리퍼스를 구단 사상 최초로 플레이오프에 진출시킨 일(1992, 1993)은 브라운 감독의 최고의 업적 중 하나다. 선수 시절엔 3차례나 ABA 어시스트 왕이 됐고 1964년 올림픽에 출전했다. 캔자스대와 UCLA의 감독으로도 활약한 브라운은 리그에서 알아주는 ‘저니 맨(Journey man)'이다. 피스톤스에서도 한 차례 챔피언으로 인도해 역시 브라운이라는 칭송을 들었다.


DREAM TEAM TWO

 
영원한 피스톤스 맨 조 듀마스

'영원한 피스톤스 맨'인 조 듀마스는 피스톤스에서 프로 데뷔를 한 후 줄곧 디트로이트를 떠나지 않았던 인물이다.  그는 피스톤스가 1989년과 1990 NBA 챔피언이 되는데 큰 공을 세웠다. 그는 외곽슛이 좋고 무엇보다 수비가 좋은 선수였다. 올해의 수비팀(베스트5)에 무려 4번이나 들어갔을 정도다. 1989 NBA 챔피언 결정전에서 MVP로 선정되기도 한 듀마스는 현재 피스톤스 구단의 사장으로 일을 하고 있다.

 배드 보이스의 선동자 토마스

 '전설적인 포인트 가드'하면 아이제이아 토마스를 떠올린다. 피스톤스 시절 그는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코트 전체를 휘젓고 다니며 소속팀을 리그 최강으로 이끈 바 있다. 피스톤스는 토마스 체제하에서 1989 1990 2차례나 NBA 챔피언이 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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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밝은터(ICCsports.com 블로거) 사진: ICCsports.com과 PicApp

San Antonio Spurs Tim Duncan drives to the basket in Washington

샌안토니오 스퍼스는
 NBA 팀 중 보스턴 셀틱스, LA 레이커스, 시카고 불스와 함께 4회 이상 챔피언에 오른 네 팀 이다.

1976 ABANBA가 합병했을 때 NBA에 들어온 스퍼스는 ABA 팀 중에서는 유일하게 챔피언 자리에 올랐다. NBA에 들어온 후 스퍼스는 단 4번만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33시즌 동안 스퍼스는 17차례 조 챔피언이 됐고(NBA 최다) 최근 20년 동안 19차례나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명문으로 남아 있다.  팀 던컨이 합류한 후에는 단 한 번도 플레이오프에 빠지지 않고 출전했던 팀이 스퍼스다.

스퍼스는 샌안토니오 지역에서는 보배같은 팀이다. 이 지역에서 유일한 메이저 프로 스포츠팀인 스퍼스는 1973년 이후 단 한 번도 이동 없이 지역 팬들과 희로애락을 함께 했다. 샌안토니오 팬들은 가장 충성스러운 지역 팬들 군에 속한다.

스퍼스는 눈에 띄게 3세대를 거쳤다. 1세대는 조지 거빈 시대다. 조지 거빈은 스퍼스에서 1976년부터 1985년까지 뛰면서 소속팀이 꾸준하게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도록 도왔다.

Celebrities At Lakers Game

2세대는 해군 제독데이비드 로빈슨 시대라고 할 수 있다.  그는 1989년부터 1997년까지 스퍼스의 리더였고 거의 매년 소속팀이 강한 팀으로 분류되도록 도왔다. 매년 좋은 성적을 냈지만 우승과는 거리가 멀었던 스퍼스는 제3세대에서 드디어 챔피언이 됐다. 그 리더는 팀 던컨이었다.

팀 던컨이 1999년 전체 1번 지명으로 스퍼스 유니폼을 입으면서 이 팀은 트윈 타워체제로 들어갔고 마침내 챔피언에 등극했다. 1999NBA 챔피언 결정전에서 스퍼스는 뉴욕 닉스를 누르고 구단 역사상 첫 NBA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로빈슨은 2003년에도 챔피언 반지를 차지한 후 은퇴했고 던컨이 중심이 된 스퍼스는 2005년과 2007년에 챔피언 반지를 추가했다.

David Robinson and Tim Duncan (Twin Tower)
David Robinson and Tim Duncan (Twin Tower) by iccsports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스퍼스는 90년대 후반 이후 최고의 명문 구단은 스퍼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스퍼스 구단의 주요 인물들은 다음과 같다.

☆피터 홀트(구단주): 피터 홀트의 증조부인 벤자민 홀트는 '무한 궤도식 트랙터(caterpillar tractor)'를 탄생시킨 발명가다. 홀트가는 100년 전 트랙터 장비 회사를 차려 거부가 됐고 가업이 피터 홀트에게 전수됐다. 홀트 캣이라는 회사의 CEO인 피터 홀트는 지난 1993년 스퍼스 구단을 사들였다. 스퍼스의 연고지 이전에 대한 논의가 나왔을 때 홀트는 구단이 샌안토니오를 떠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SBC 센터( AT&T. 센터)를 건설하는 등 커뮤니티의 발전에 힘을 쏟았다. 스퍼스가 3차례나 NBA 챔피언에 오르자 연고지 이전 이야기는 더는 나오지 않았다.

R.C. 뷰포드(단장): 지난 2002년 스퍼스의 단장이 됐다. 마누 지노블리와 계약을 한 것과 스티브 커를 2002년에 영입한 일은 최고의 업적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2003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지명한 레안드리뉴 바르보사(28)를 피닉스 선스로 보낸 것은 최대의 실수였다는 지적도 있었다.

☆그렉 포포비치(감독): 세르비아계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난 포포비치는 유럽 농구에 정통한 인물이다. 포포비치는 공군사관학교에서 소비에트학 전공으로 학사 학위를 받은 바 있고 공사 소속으로 유럽 투어의 경험이 풍부하다. NBA 챔피언 반지 4개를 받은 포포비치는 1996년부터 스퍼스의 감독이 됐는데 제리 슬로언(유타 재즈) 감독처럼 장기집권할 태세다.

Tim Duncan
Tim Duncan by iccsports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팀 던컨(파워 포워드): 스퍼스가 1999년부터 4회 우승을 하는 데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한 선수가 던컨이다. NBA MVP 수상 2, NBA 챔피언 결정전 MVP 3회의 화려한 경력을 가진 선수이지만 입이 무거워 좀처럼 언론 기자들의 유도 질문에 넘어가지 않는다. 최고의 선수이지만 사생활이 가장 알려지지 않은 선수 중 한 명이다. 사적인 자리에서는 유머가 넘치는 선수로 알려졌다.

☆마누 지노블리(슈팅 가드): 아르헨티나가 낳은 최고의 농구 선수다. 유로 리그 챔피언, NBA 챔피언, 올림픽 금메달 등 농구 선수로서 최고의 영예는 다 안아본 선수인 지노블리는 지난 1999 NBA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전체 57번으로 지명됐다. 무려 56명이 지노블리에 앞서 지명됐다는 것은 다른 팀 입장에서는 아쉬운 일이다. 아르헨티나, 이탈리아 이중국적자인 지노블리는 스퍼스에서 없어서는 안 될 선수다.  

☆토니 파커(포인트 가드): 프랑스 출신의 파커는 2001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28번으로 지명됐지만 지금은 NBA 최고의 포인트 가드 중 한 명으로 손꼽힌다. 스퍼스는 넘버2와 넘버3를 낮은 드래프트 지명권으로 데려와 팀 전력을 강화했다. 스카우트 부서의 승리라고 할 수 있다. 한때 '스퍼스는 파커 때문에 우승을 할 수 없다'는 말도 있었지만 2007년 그가 NBA 챔프 결정전에서 MVP로 선정된 후 더는 그런 말을 들을 수 없었다.

Celebs at mens final of 2009 French Tennis Open - Paris

스퍼스는 보통 지루한 팀이라고들 한다. 경기를 풀어가는 방식뿐만 아니라 선수들 개개인이 흥미를 자극하는 무언 가를 내놓지 않는다는 것이다. 언론과 팬은 자극적인 것을 원한다. 스퍼스는 단 그런 점이 잘 보이지 않는다. 파커가 배우 에반 롱고리아와 결혼한 것 외에는 가십거리가 나오지 않는 구단이다.

팀 던컨은 오프시즌이 되면 잠수함을 타는 선수다. 동료에 대해 나쁜 말을 절대하지 않는다. '서커스'를 원하는 언론은 던컨을 평가절하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챔피언이다.

챔피언팀인 휴스턴 로키츠, LA 레이커스, 스퍼스에서 뛰었던 로버트 오리는 스퍼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선수들은 뽐내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 주장인 던컨을 존중한다. 몇 번 우승한 것에 대한 이야기도 없다. 선수들 사이에 연봉을 비교하는 일은 절대 없다."

이렇게 좋은'(team)'이 있을까. 레이커스와 비교해보자. 샤킬 오닐, 코비 브라이언트가 함께 뛰었던 시절의 레이커스는 항상 이야깃거리로 가득했다. 동료 선수, 코치, 심지어 구단주에 대한 '뒷담화'는 언론 기자들을 즐겁게 해줬다. 특히 오닐과 브라이언트의 자존심 싸움은 극에 달해 마치 '소프 오페라'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줬다. 하지만 그것이 레이커스 왕조가 잠시 무너지는 원인이 됐다.

오리는 "레이커스는 결국 돈 때문에 어려움을 겪은 팀이 됐다. 그들은 동료 선수보다 더 많은 돈을 받길 원했다. 오닐과 브라이언트는 자신의 몸값만 생각했지 동료는 안중에도 없었다. 레이커스가 무너진 것은 돈 때문이었다"고 설명했다.

스퍼스는 재미는 없지만 '(team)'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주는 진정한 ''이다. 미국은 그것을 놓치고 있다. 그저 '미니 시리즈'와 같은 자극만을 원하고 있는 듯하다. 스퍼스를 지나치게 평가절하하고 있는 것이다.

전 스퍼스 선수이자 현 농구 분석가인 션 엘리엇은 "스퍼스를 평가절하하는 것은 언론의 숨은 의도가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언론이 스퍼스를 지루한 팀이라고 하면서 스퍼스를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있다"고 했다. 엘리엇은 "팀을 생각하는 농구, 이기주의를 뺀 농구, 기초가 든든한 농구를 하는 팀이 스퍼스다. 제대로 농구하는 팀을 어떻게 지루한 팀으로 함부로 다룰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덧붙
였다
.

San Antonio Spurs vs Denver Nuggets in Denver, Colorado

스퍼스는 또한 돈으로 만든 팀이 아니다. 이 팀의 핵심 선수를 보면 알 수 있다. 팀 던컨, 토니 파커, 마누 지노블리는 드래프트에서 지명한 선수들이고 브루스 보웬은 무명의 선수를 키운 사례다. 자유 계약 시장에서 거물을 데려와 팀을 강하게 만든 흔적이 거의 없다. 이는 결국 경영진의 건실한 경영 철학이 녹아든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건실하게 만든 구단인데 언론은 연일 '지루한 팀'으로 매도하고 있다. 구글 검색에서 Spurs Boring이라는 단어를 입력하면 꽤 많은 기사를 읽을 수 있다.

농구를 진지하게 보는 사람들의 눈에 스퍼스는 위대한 팀이다. 과거 한국의 드라마 중 '네 멋대로 해라'(양동근, 이나영 주연)는 연기, 극본, 연출이 완벽에 가까운 드라마였지만 시청률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 하지만 드라마를 볼 줄 아는 사람들은 '네 멋대로 해라'의 폐인이 됐다. '스퍼스 드라마'는 자극은 없지만 완성도가 높은 '네 멋대로 해라'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2009/04/28 - [Special] 샌안토니오 스퍼스, 그들의 시대는 끝났나? 솔루션은?
2010/01/08 - [특집/스포츠 스타 열전] - [스타 열전] 팀 던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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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wow 2010/02/17 19: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봤습니다. 스퍼스를 좋아하는 저로써는 이번시즌 약간 부진한게 맘아프네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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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A 30개 구단 역사(2)] LA 레이커스

연재/NBA 30개구단 역사 | 2010/01/08 20:39 | Posted by ICCsports 밝은터

1960 미네소타에서 LA 연고지를 이동한 레이커스는 2008-09시즌까지 10차례 NBA 챔피언 자리에 올랐다. NBA 챔피언 결정전에 진출한 횟수는 24. 챔피언 결정전에서 10 승리하고 14번은 준우승을 했다.
 

레이커스 역사상 NBA 챔피언 결정전에서 가장 성공적이었던 하나는 2000, 2001, 2002년의 레이커스다. 샤킬 오닐, 코비 브라이언트가 중심이 레이커스는 3 연속 챔피언 자리에 올라 구단 역사상 최초로 '스리 피트(Three-peat)' 경험했다.


글: 밝은터(ICCsports.com) 사진: ICCsports.com, PicApp.com, GRANDBigBird

Staples Center (Los Angeles)
Staples Center (Los Angeles) by iccsports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이전까지는 1987, 1988년의 2연패가 최다 연속 우승이었다. 87년과 88년에는 커림 압둘 자바, 매직 존슨이 레이커스 유니폼을 입고 뛰었다. 1972 차례 챔피언 자리에 올랐던 레이커스는 80년대 '쇼타임 시대' 5 챔피언 됐다. 80년대에 레이커스는 8번이나 챔피언 결정전에 진출했다.

 80년대에 레이커스는 보스턴 셀틱스와 라이벌 구도를 이루며 세계 농구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레이커스에는 매직 존슨이 있었고 셀틱스에는 래리 버드가 있었다. 선수는 대학 시절 라이벌이었다.

수퍼스타가 중심이 레이커스와 셀틱스의 라이벌 대결은 NBA 인기를 올려놓는데 결정적인 공을 세운 있다.   구단의 80년대 라이벌 대결은 여러 이유로 관심을 끌었다. 버드와 존슨의 대결뿐만 아니라 백인 군단(셀틱스) 흑인 군단(레이커스) 대결, 동부 끝과 서부 끝에 있는 구단의 대결 등이 많은 이의 관심을 만한 요소였다. 구단의 라이벌 대결이 시작하기 NBA 적자에 시달리는 리그였다. 레이커스-셀틱스의 세기의 라이벌 대결이 리그가 성장하는 밑거름을 줬다면 마이클 조던(시카고 불스) 등장은 NBA 미국 최고의 프로 스포츠로 자리를 잡도록 했다.


NCAA Championship Game: Michigan State Spartans v North Carolina Tar Heels
래리 버드와 매직 존슨

셀틱스와 레이커스는 1984, 1985, 1987 차례 NBA 챔피언 결정전에서 맞붙었다. 대결 모두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다. 미국 내에서는 시리즈 내내 구단의 대결이 최고의 뉴스거리였다.

리그를 살렸던 구단의 라이벌 대결은 80년대 후반까지 계속 이어지다가 90년대에 존슨과 버드의 은퇴로 끝이 났다. 셀틱스는 90년대와 21세기에 평범한 구단으로 전락했고 레이커스는 올라갈 때와 내려갈 때의 편차가 심했다. 90년대는 시카고 불스의 독주가 대세였다.

셀틱스와 레이커스의 라이벌 전초전은 사실 60년대부터 시작했는데 당시에는 셀틱스가 모두 승리를 거뒀다. 60년대에 6차례 맞대결을 펼쳐 셀틱스가 전승을 거뒀다. 진정한 라이벌전은 아니었다. 80년대 라이벌 대결에서는 레이커스가 2 우승, 셀틱스가 1 우승을 기록했다.

레이커스와 인연을 맺고 명예의 전당에 들어간 인물은 20명이다. 선수 15, 감독 4, 방송인1명이 주인공. 명예의 전당에 들어간 레이커스 출신은 커림 압둘 자바, 윌트 체임벌린, 게일 굿리치, 코니 호킨스, 매직 존슨, 클라이드 로벨레트, 슬레이터 마틴, 맥카두, 조지 마이칸, 미켈슨, 팔러드, 제임스 워디, 제리 웨스트, 등이다. 헌은 레이커스 경기 중계 아나운서로 무려 42 동안 일하면서 수많은 농구 용어를 창출했다.


California v UCLA

커림 압둘 자바는 NBA 역대 최다 득점 선수로 그의 대기록을 깨는 것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윌트 체임벌린은 평균 득점이 역대 최다인 30.1득점인 전설적인 센터. 매직 존슨과 제임스 워디는 쇼타임의 중심이었고 게일 굿리치, 맥카두, 조지 마이칸, 제리 웨스트 등도 레이커스 왕조를 세우는 결정적인 역할을 인물들이다. 특히 웨스트는 은퇴 후에도 레이커스 감독, 단장, 부사장 등으로 구단이 높은 수준의 구단이 되는데 공을 세웠다.

웨스트는 샬럿 호네츠에 지명된 코비 브라이언트를 영입하는 트레이드를 성사시켰고 샤킬 오닐이 올랜도 매직을 떠나 레이커스와 계약을 맺도록 설득한 있다. 그는 또한 선수가 신경전을 벌일 때마다 충고를 하면서 문제가 커지지 않도록 도왔다.

Magic Johnson Interview

Magic Johnson Interview by iccsports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존슨은 영원한 레이커스 맨이다. 그는 선수 시절 줄곧 레이커스 선수로 뛰었고 이후 잠시 감독으로 활동한 구단의 부사장이 됐다. 커림 압둘 자바도 구단의 코치로 활동 중이다. 제임스 워디는 레이커스 경기 중계사인 K-CAL 방송의 스튜디오 분석가로 일하고 있다.


레이커스를
거쳐간 유명 감독을 보면 대표적인 인물이 라일리다. 그는 쇼타임 시대에 레이커스 감독이었다. 잭슨은 설명이 필요 없는 전설적인 감독. 레이커스에서 4차례 챔피언 반지를 받았다.


Portrait of Los Angeles Lakers owner Jerry Buss
제리 버스

레이커스의 구단주는 제리 버스로 그는 1979 레이커스 구단을 6,750 달러에 사들였다. 당시에는 스포츠 역사상 최고액 구단 매각액이었다. 제리 버스 구단주의 리더십 아래 레이커스는 더욱 견고한 구단이 됐다.  버스는 부동산 투자로 큰돈을 만진 인물이다. 그는 언제 부동산을 매입하고 언제 매각하는 지를 너무나 아는 천재적인 투자가다.

레이커스 역사를 뒤돌아볼 버스 구단주의 투자는 대부분 적중했다.

현재 레이커스의 살림살이를 맡고 있는 인물은 미치 컵첵이다.

노스캐롤라이나대 출신인 컵책 단장 및 부사장은 1976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같은 해 NBA 드래프트에서 워싱턴 불리츠(위저즈)에 의해 전체 13번으로 지명돼 프로생활을 시작한 바 있는 선수 출신이다.

워싱턴에서 스타로 자리잡았던 그는 1981년 레이커스와 계약하며 '호숫가의 사나이‘가 됐다. 그러나 첫 시즌에 무릎 부상을 당한 그는 재활 치료 중 UCLA에서 MBA 과정을 시작했다. 레이커스의 프런트 오피스 일을 돕기 위한 준비였다.

이후 기적처럼 코트에 돌아온 컵책은 1985년에 레이커스의 챔피언 등극을 도운 후 1986년부터 단장 사무실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당시 농구팀 운영 책임자였던 웨스트의 오른팔 역할을 했던 컵책은 14년간 카리스마가 넘치는 단장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고 지난 2000년 웨스트가 현직에서 물러나자 새로운 단장으로 취임했다.


미니 박스  '쇼타임' 대 '샤크-코비팀' 누가 이길까

Kobe Bryant Smi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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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쇼타임’의 레이커스와 ‘코비-샤크’의 레이커스를 맞붙는다면 어떤 팀이 이길까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일 것이다.

‘쇼타임’때의 레이커스는 보스턴 셀틱스와 라이벌 관계를 유지하면서 80년대를 풍미했던 팀. 매직 존슨, 커림 압둘 자바, 제임스 워디, 바이런 스캇 등으로 이뤄진 ‘쇼타임’ 레이커스는 NBA가 미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리그로 발돋움 시키는데 결정적인 공을 세운 바 있다.

코비 브라이언트와 샤킬 오닐이 이끌었던 현재의 레이커스도 막강하다. 한때 3년 연속 챔피언에 오르며 무적함대를 자랑했다. 레이커스 90년대에 시카고 불스가 있었다면 2000년대에는 레이커스가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80년대의 팀과 현재의 팀이 맞붙는다면 80년대의 팀이 우세하다는 주장이 있었다.

‘쇼타임’ 레이커스의 일원이자 '샤크-코비' 시대에 뉴저지 네츠의 감독이었던 바이런 스캇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매치업별로 살펴보기로 한다.

▶센터간의 대결

샤킬 오닐은 커림 압둘 자바를 상대로 지금처럼 득점을 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실점도 많을 것이다. 압둘 자바의 스카이 훅 샷을 막을 선수는 아무도 없다. 또 압둘 자바는 근성이 있는 선수다. 그는 화나면 더욱 점수를 올리는 선수다.

▶슈팅 가드의 대결

‘쇼타임’ 레이커스의 슈팅가드였던 스캇은 “솔직히 이 매치업은 내가 자신이 없다. 나는 경기 내내 코비 브라이언트를 밀착 마크하느라 시간을 다 보낼 것이다. 슈팅 가드 싸움에서는 우리가 밀린다”고 말했다.

▶포인트 가드 대결

매직 존슨을 막을 포인트 가드는 없다. 코비가 매직을 막는다고 하더라도 존슨이 포스트 플레이를 하면 도저히 상대가 되질 않는다. 데릭 피셔나 린지 헌터와 같은 키작은 가드들은 더더욱 매직을 막기 어려울 것이다.

▶포워드의 대결

제임스 워디를 로버트 오리가 막을 수 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키가 크면서도 몸이 가드 못지 않게 빠른 워디를 제대로 막을 수 있는 선수는 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없다고 볼 수 있다. [밝은터]

 

미니 박스 전설적인 아나운서 칙 헌은 누구인가
Chick Hearn Dead At 85

LA 레이커스 중계의 ‘전설적인 목소리’ 칙 헌이 2002년 8월5일 85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칙 헌은 ‘슬램 덩크’등 그동안 숱한 신생어를 만들어내며 농구팬들의 사랑을 받아 온 언어의 마술사. 이젠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만 그의 ‘농구 중계’ 일생을 담아봤다.

◇ 칙 헌은 누구인가

칙 헌은 아무리 몸이 아파도 일단 중계석에 앉아야 직성이 풀리는 그야말로 ‘스포츠 중계를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다. 1916년 11월27일 일리노이주 오로라에서 출생한 그의 본명은 프랜시스 대일 헌이다.  칙(chick)이라는 별명은 AAU 농구 선수였던 시절 운동화가 든 박스를 받았는데 그 안에 치킨(chicken)만 들어 있는 것이 발견됐고 이때부터 동료들이 ‘칙(chick)’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지난 56년 LA로 이주하면서 본격적으로 LA 스포츠 경기를 중계하기 시작했다. 그는 USC 풋볼과 농구의 아나운서로 활동했고 이후에는 라디오 토크쇼를 진행하며 그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60년대에 에미상을 두 차례나 수상 했던 헌은 레이커스가 미니애폴리스에서 LA로 옮긴 61년부터 레이커스의 ‘플레이-바이-플레이’ 중계 아나운서가 된 이후 2002년 6월12일 뉴저지 네츠와의 챔피언십 결정전 4차전으로 끝으로 42년간의 중계 일생을 마감하게 됐다.

특히 지난 65년 11월21일부터 2001년 12월16일까지 36년동안 3천338경기에 연속 마이크를 잡았다.  칙 헌이 마이크를 잡았던 기간 레이커스는 총 36만2천32득점에 2천74승을 거뒀고 8차례나 NBA정상에 올랐다.

제리 웨스트, 윌트 체임벌린, 커림 압둘 자바, 매직 존슨, 샤킬 오닐, 코비 브라이언트 등이 챔피언에 오르는 장면을 목격하는 등 232명의 플레이를 시청자들에게 전달했다. 


 2010/01/06 - [연재/NBA 30개구단 역사] - [NBA 30개 구단 역사(1)]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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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틀랜드 블레이저스는 1970년 창단한 구단으로 오리건주의 유일한 메이저 프로 스포츠 구단이다. 오리건주에서 유일한 프로 구단이다 보니 1977년부터 1995년까지 무려 814경기 연속 티켓 매진을 기록하는 등 절대적인 사랑을 받았다. 이는 미국 프로 스포츠 역사상 유일무이한 일이었다. 1977년은 블레이저스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NBA 챔피언이 된 해이다 

글: 밝은터(ICCsports.com 블로거)



 
블레이저스는 90년대 초반이 전성기였다. 당시 두 번이나 NBA 챔피언 결정전에 진출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공동 창업주인 폴 앨런이 구단주로 있는 이 팀의 단장은 케빈 프리처드이고 네잇 맥밀런이 감독으로 재직 중이다.

 
블레이저스는 과거 하승진의 소속팀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하승진은 지난 2004 NBA 드래프트에서 전체 46번으로 블레이저스에 지명됐지만 46경기만 뛰고 NBDL(하위리그)을 전전했고 이후 밀워키 벅스로 트레이드됐다. 벅스에서도 방출된 그는 한국으로 돌아갔다

 
블레이저스는 드래프트에서 불운한 편이었다. 특히 1984 NBA 신인 드래프트에서 마이클 조던을 뽑지 않고 샘 보위를 지명한 것은 역사상 최악의 결정이었다. 그런 팀이 23년 후인 2007 1번 지명권으로 그렉 오든을 지명했는데 오든은 놀라운 성적을 낼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부상에 시달리며 팀에 큰 보탬이 되지 못했다.



 
이 구단은 2007-08시즌을 우울하게 맞은 바 있다오든이 부상으로 뛰지 못하자 암울한 분위기였던 것블레이저스는 2007 1130일까지 암울한 분위기에 있었다. 하지만 놀라운 일은 2007 12월부터 있었다. 이 팀은 2007 123일부터 30일까지 13연승을 내달렸던 것블레이저스는 이후 서부 컨퍼런스에서 중상위권의 팀이 됐다.

 
블레이저스의 상승과 뉴올리언스 호네츠의 급상승은 서부 컨퍼런스 전체 그림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과거 같았으면 승률 5할 안팎의 기록으로 플레이오프 진출이 가능했지만 이제는 6할 승률 안팎이 아니면 서부 컨퍼런스에서 포스트 시즌 진출을 보장할 수 없게 됐다

 
블레이저스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었던가. 워싱턴대 출신의 슈팅 가드 브랜던 로이의 발돋움이 눈에 띄었다. 로이는 신인왕 출신으로 블레이저스의 얼굴마담 노릇을 했다로이는 득점력이 높으면서도 어시스트를 잘하는 선수다. 2006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그를 지명한 후 블레이저스로 트레이드한 미네소타 팀버울브스의 케빈 맥헤일 단장은 후회 막심할 것이다. 로이가 뛰어난 선수임은 모두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잘할 것으로 생각한 전문가들은 사실 없었다



 
보스턴 셀틱스의 닥 리버스 감독은 2007년 로이에 대해 "그는 MVP급 시즌을 보내고 있다"고 극찬했다. 리버스의 칭찬은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그는 "로이는 슈팅 능력이 좋고, 공을 잘 다루고, 수비가 뛰어나다. 그는 상대팀의 최고 선수를 매일 밤 방어한다"고 부연설명을 했다. 이에 로이는 "그런 말을 들으니 기분이 좋다. 그러나 내가 할 일은 소속팀 승리를 위해 도움을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쭐하지 않고 더 좋은 선수가 되는 데 힘을 쏟겠다는 게 로이의 반응이었다

 
블레이저스 팬들은 또한 포워드겸 센터인 라마커스 얼드릿지의 급성장에 놀랐다. 신인 시즌에 9득점, 5리바운드를 기록했던 얼드릿지는 두 번째 시즌에 A급 빅맨이 됐다. 얼드릿지는 로이와 함께 블레이저스의 '-투 펀치' 됐다.


 네잇 맥밀런 블레이저스 감독은 그러나 두 선수에 의존하는 경기를 하지 않았다. 선수들의 고른 기여를 강조했다. NBA 전문가들은 두 스타 선수를 중심으로 벤치 선수들의 기여도가 높은 블레이저스가 수년 내에 막강 전력을 자랑할 것으로 예상했다

 
만약 오든이 완전한 몸 상태로 복귀한다면 블레이저스는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에 구가했던 전성기를 재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당시 블레이저스는 클라이드 드렉슬러, 테리 포터, 클리프 로빈슨, 저롬 커시, 케빈 덕워스, 벅 윌리엄스로 이뤄진 막강 화력의 군단이었다.

 1988
년 마이크로소프트사의 공동 창업주였던 폴 앨런이 블레이저스 구단을 사들인 후 이 팀은 크게 달라졌다. 선수를 대폭 교체하고 릭 애들먼에 감독 자리를 맡기면서 포틀랜드는 완전히 다른 구단이 됐다. 이 구단은 1990년과 1992년에 NBA 챔피언 결정전에 진출하며 르네상스 시대를 맞았는데 불행히도 디트로이트 피스톤스, 시카고 불스의 전성기 때 결승에서 만나 챔피언이 되지는 못했다.




 
1994
년 밥 윗시트가 단장이 되면서 파워군단은 해체됐다. 윌리엄스, 포터, 로빈슨, 커시 등이 블레이저스를 떠났다. 1995년 가을 마침내 2만 명이 매경기 모여들었던 로즈 가든은 연속 매진 기록은 중단됐다.

 블레이저스의 재건 노력은 계속 이어졌고 마침내 챔피언이 될 기회를 얻었다. 스카티 피핀, 라시드 월러스, 데이먼 스타더마이어 등을 영입한 이 구단은 90년대 후반 NBA의 강자로 군림했다. 하지만 번번이 서부 컨퍼런스 결승에서 미끄러졌다. 2000년 서부 컨퍼런스 결승에서는 LA 레이커스에 거의 승리했다가 막판 극적인 역전골을 허용하면서 역전패했다. 당시 블레이저스는 리그 최강의 전력을 구축했지만 불운했다고 할 수 있다.

 이후 2001, 2002, 2003년 플레이오프에서 1라운드 탈락의 쓴잔을 마신 블레이저스는 2008년까지 플레이오프에도 못 나가는 팀으로 전락했다.

 39년 동안 블레이저스는 플레이오프에 27번 진출했고 1977년 딱 한 번 NBA 챔피언 자리에 올랐다. NBA 챔피언 결정전에는 2번 나갔고 시즌 최고 승률은 1991년에 기록했다 (6319). 1977년 챔피언십 당시 블레이저스에는 전설적인 지도자 잭 램지와 대학농구의 전설적인 선수 빌 월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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