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필 잭슨 |
2010/01/27 22:31 |
Posted by ICCsports 밝은터
LA 레이커스에서 필 잭슨 감독을 돕는 어시스턴트 코치는 어떤 인물일까.
짐 클레몬스는 과거 시카고 불스에서 필 잭슨 감독의 어시턴트로 활동하면서 5개의 챔피언 반지를 받았고 또 LA 레이커스에서 반지 5개를 추가한 바 있다.
클레몬스는 프로농구(NBA) 감독 경력도 있는 인물이다. 그는 불스의 5차례 챔피언 등극을 도운 후 지난 1996년 댈러스 매버릭스의 감독으로 임명됐다. 그는 매버릭스에서 '트라이앵글 오펜스'를 도입했지만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그리고 '미래의 스타' 제이슨 키드와의 불화로 댈러스 지역 언론으로부터 비난의 화살을 끊임없이 받았다. 매버릭스에서 28승72패라는 초라한 성적을 기록한 클레몬스는 결국 1년6개월만에 해고됐고 잠시 여자 프로농구(ABL)에서 외도를 하다가 1999년 레이커스의 '넘버 1' 어시스턴트 코치로 계약을 맺었다.
클레몬스의 필 잭슨 감독과의 인연은 각별하다. 두 사람은 뉴욕 닉스에서 선수로 뛰던 시절 팀 동료였던 것이 불스와 레이커스 왕조를 세우는 연결고리가 됐다. 90년대 후반, 덕 콜린스 전 불스 감독의 어시스턴트로 활동하다가 전격적으로 불스의 감독이 된 잭슨은 곧바로 클레몬스를 영입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트라이앵글 오펜스의 창시자인 텍스 윈터 코치와 함께 불스를 6차례나 챔피언으로 이끌었다. 불스 시절 잭슨 감독은 클레몬스에게 팀 연습을 맡길 때가 많았다. 또 감독 자신이 퇴장당하면 클레몬스에 지휘봉을 넘겨줬다.
잭슨 감독은 클레몬스를 철저히 신뢰했다. 클레몬스도 잭슨에 충성스러웠고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성공의 디딤돌이 되게 하려고 애쓰지 않았다. 오하이오 스테이트 출신인 클레몬스는 지난 1971년 NBA 신인 드래프트에서 레이커스에 의해 전체 13번으로 지명됐지만 이렇다할 활약을 보이지 못하고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로 트레이드 됐고 이후에도 화려한 선수시절을 보내지 못했다. 그러나 코치로서는 대성공을 거뒀고 현재 자신의 역할에 "만족하며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한다. [밝은터]
Height: 6-3 ▪ Weight: 185 lbs. Born: September 13, 1949 in Lincolnton, North Carolina High School: Linden McKinley in Columbus, Ohio College: Ohio State University As Player: 652 G, 8.3 PPG, 3.0 RPG, 3.9 APG [출처: http://www.basketball-reference.com/coaches/cleamji01c.html ]
연재/필 잭슨 |
2009/06/22 22:09 |
Posted by ICCsports 밝은터
필 잭슨 LA 레이커스 감독이 통산 10번째 챔피언 반지를 받게 됐다. 이는 실로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 감독이 미국 메이저 스포츠에서 10회 우승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금자탑을 세운 것이나 다름 없다. 필자는 지난 2005년부터 잭슨 감독에 관해 쓴 글을 정리해보았다.
s2008년2월19일: NBA 시즌 전반부에 35승17패를 기록한 LA 레이커스는 후반부에 20승-25승 추가를 목표로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필 잭슨 레이커스 감독은 서부 컨퍼런스에서 4위 이내에 들으려면 20-25승이 필요함을 LA 지역 언론 기자들과의 기자회견에서 밝혔다. 레이커스는 앞으로 30경기를 남겨두고 있다. 20-25승은 가능한 승수일까? 잭슨 감독은 긍정적으로 말했다.
최고의 공격력을 자랑하기 때문에 20-25승은 어려운 일이 아닌 것으로 그는 믿고 있다. 잭슨 감독은 LA 지역 언론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선수들의 태도가 마음에 든다."라고 말했다. 까다로운 잭슨 감독이 한 말이기 때문에 극찬이라고 할 수 있다. 잭슨 감독은 "우리는 팀을 만들어가고 있고 선수들은 성장하고 있다. 그들이 발전하는 모습을 보면 흥미롭다."라고 덧붙였다.
잭슨 감독은 "레이커스의 공격은 완벽한 수준"이라고 말하면서 특별히 3점슈터들이 늘어나면서 상대 수비수들을 외곽으로 끌어내고 동료에게 더 좋은 공격 기회를 줄 수 있는 것이 최대 장점이라고 말했다. 레이커스가 가장 필요했던 부분이 채워진 것이다. 그러나 수비에서는 여전히 수정해야 할 부분이 많다고 잭슨 감독은 지적했다.
s2008년2월20일: 선스 팬들은 '안티 코비'로 악명 높다. 레이커스 팬들은 선스 유니폼을 입은 샤킬 오닐을 싫어한다. 최근 필 잭슨 감독은 오닐에 대해 비아냥거리는 듯한 발언을 해 오닐의 감정을 자극했다. 여기에 오닐과 코비의 자존심 싸움에 대한 앙금은 여전히 남아 있다. 감독들의 자존심 싸움도 대단하다. 지난해 11월2일 LA 레이커스가 피닉스 선스를 119-99로 대파한 날에 두 감독의 감정이 폭발했다. 경기 종료 4분45초를 남기고 레이커스가 111-81로 앞선 상황에서 마이크 댄토니(위 사진) 선스 감독이 타임아웃을 불렀는데 작전회의가 끝나고 선스 선수들이 코트에 들어서려 하자 이번엔 필 잭슨 감독이 타임아웃을 불러 댄토니를 화나게 했다.
이에 댄토니는 잭슨을 향해 "너가 그렇게 대단한 감독이야? 네 맘대로 해!"라며 화를 냈다. 벤치에 앉아있던 잭슨도 "입 다물고 자리에 가서 앉아!"라고 맞받아쳤다.
s2008년 2월25일: 레이커스의 필 잭슨 감독은 부야치치(아래 사진)를 '정오의 슈터'로 불렀다. 아침 연습 때에는 3점슛을 던지면 백발백중인데 저녁 경기만 시작하면 공이 림 안으로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었다. 부야치치는 이제 더는 '정오의 슈터'로 불리지 않는다. 밤이 되어도 슛이 정확해졌다. 부야치치는 특히 중요한 순간에 한 방을 잘 터뜨린다. 코비 브라이언트는 "그는 원래 슛이 정확했다. 이제 그것이 결과로 나타나니 자신감이 생겼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야치치도 이를 인정했다. 그는 "이제는 실수 한 번 했다고 감독이 나를 벤치로 부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제는 실수해도 당장 만회를 할 것이라는 믿음이 코칭 스태프에 생겼다고 한다.
s2008년 2월27일: 과거 코비의 MVP 후보론에 대해 심드렁한 반응을 보였던 필 잭슨 레이커스 감독도 "당연히 코비는 MVP 후보다."라고 말했다. "당연히(definitely)"라는 표현이 강하게 느껴진다. 잭슨 감독은 "코비는 동료를 더 좋은 선수로 만드는 리더가 됐다."라고 극찬했다. 농구 시즌이 종반을 향해 달려가면서 MVP 수상 후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가운데 전문가들은 르브론 제임스(클리블랜드)와 케빈 가넷(보스턴 셀틱스)을 수상 후보로 올려놓았다. 잭슨 감독은 "두 선수 모두 MVP 수상 자격이 있다. 코비도 유력한 수상 후보로 여겨져야 한다."라고 말했다.(실제 감독의 안수(?)를 받은 코비는 이 시즌에 MVP로 선정됐다.)
s2008년4월21일: NBA의 명문 구단인 레이커스는 1988년 이후 단 한 번도 NBA 챔피언이 되지 못했다. 90년대에는 서부에서도 명함을 내밀지 못했다. 오랜 시간 우승 가뭄에 시달렸기 때문인지 2000년 NBA 챔피언 우승의 순간은 잊을 수 없다. 필 잭슨 전 시카고 불스 감독을 영입한 레이커스는 정규 시즌에 67승15패를 기록하더니 NBA 챔피언이 됐다. 레이커스는 서부 컨퍼런스 결승 시리즈 7차전(대 포틀랜드 전)에서 15점차로 뒤져 패색이 짙었으나 경기 막판 대역전에 성공해 결국 4승3패로 승리했다. 이 경기에서 코비 브라이언트가 샤킬 오닐에게 공중 패스한 것을 오닐이 슬램덩크로 연결한 장면은 하일라이트였다.
s2008년5월5일 (코비가 MVP로 선정된 후): 코비 브라이언트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지도자를 꼽는다면 역시 필 잭슨일 것이다. 잭슨 감독은 1999-2000시즌에 레이커스 감독이 됐다. 시카고 불스를 '왕조'로 만들었던 '트라이앵글 오펜스'를 들고온 잭슨 감독은 첫 시즌에는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브라이언트와 오닐은 그러나 생각이 달랐다. 3년 동안 꿈을 이루지 못했던 이들은 잭슨 감독 아래서 당장 우승하기를 원했다. 이 두 선수의 각오는 남달랐다. 그리고 결과는 잭슨 감독도 놀라워한 우승이었다.
잭슨 감독 부임 후 첫 시즌에 챔피언 자리에 올랐던 것이다. NBA 4년차였던 브라이언트는 22.5득점, 6.3리바운드, 4.9어시스트로 데뷔 후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드디어 레이커스의 시대가 열렸다. s2008년5월20일 (서부 컨퍼런스 결승 시리즈를 앞두고): 양팀 모두 경험이 풍부하고 챔피언 경력이 화려한 감독이 지휘한다. 지금까지 총 9개의 챔피언 반지를 받은 필 잭슨 레이커스 감독과 4개의 챔피언 반지를 보유한 그렉 포포비치 스퍼스 감독의 머리싸움은 흥미롭다.
두 감독은 많은 챔피언 반지를 받았음에도 그만큼 인정되지 못하는 점이 비슷하다. 잭슨 감독은 마이클 조던 덕분에 반지 6개 그리고 샤킬 오닐, 코비 브라이언트 덕붕에 반지 3개를 받았다는 이미지를 여전히 갖고 있고 포포비치는 우승을 차지한 후 다음 시즌에 성적이 좋지 않은 점에 대해 리더십 문제를 지적받았다. 그러나 두 감독은 모든 면에서 뛰어나다. NBA와 같은 세계적인 리그에서 운이 좋아 챔피언 반지를 많이 받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최고 감독간의 머리싸움, 벌써 기대가 된다.
s2008년 5월23일: LA 레이커스의 필 잭슨 감독은 샌안토니오 스퍼스의 핵심 선수인 팀 던컨을 방어하는 데 있어 색다른 방법을 썼다. 1차전에서 잭슨 감독은 1-3쿼터에 던컨을 더블팀으로 묶어두지 않았다. 던컨은 1-3쿼터에 좋은 활약을 펼쳤다. 그런데 4쿼터에서 그는 무너졌다. 이유는 잭슨 감독이 4쿼터에 던컨을 이중 방어로 막게 했기 때문이다. 가드들이 협력 수비로 던컨의 공격을 교란했다. 던컨은 어떤 수비가 나올지 몰라 당황해 했다. 레이커스가 앞으로 경기에서 스퍼스의 공격을 제한하려면 던컨을 효과적으로 막아야 한다. 1차전의 작전이 다른 경기에서도 통할까. 잭슨 감독이 던컨을 방어하고자 어떤 작전을 들고 나올지 관심이 쏠린다. 또 어떤 특이한 수비 방법을 고안해낼까.
LA 레이커스와 보스턴 셀틱스의 NBA 챔피언 결정전은 빅스타들이 대거 등장하는 대형 쇼다. 레이커스에는 코비 브라이언트, 파우 가솔, 라마 오덤이 뛰고 있고, 셀틱스에는 '빅3'로 불리는 케빈 가넷, 폴 피어스, 레이 앨런이 있다. 레이커스에는 또한 생애 10번째 챔피언 반지를 노리는 필 잭슨 감독이 있다.
여러 인물 중 가장 시선을 끄는 사람은 역시 코비와 필 잭슨 감독이다. 코비는 '제2의 마이클 조던'으로 오랫동안 불렸지만 샤킬 오닐의 빛에 가려 무늬만 '제2의 조던'이었다. 그의 나이 이제 29세. 만약 이번에 챔피언 반지를 추가한다면 그는 생애 4번째 챔피언 반지를 챙기게 된다. 조던이 29세 때 받았던 챔피언 반지 수는 2개에 불과했다. 만약 레이커스가 이러한 추세를 계속 이어간다면 코비는 조던이 받았던 챔피언 링 6개보다 더 많은 반지를 챙길 수 있다.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코비는 조던을 넘어서는 위대한 선수가 될 수 있을까. 레이커스의 감독인 필 잭슨은 10번째 반지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그는 60년대에 보스턴 셀틱스에서 무려 9개의 챔프 반지를 챙겼던 레드 아워박을 넘어서게 된다. 잭슨 감독은 아워박을 넘어서는 위대한 감독으로 평가될까. 잭슨 감독은 역대 최다 챔피언 반지 기록 경신에 나섰다. 그의 라이벌은 이미 은퇴하고 세상을 떠난 아워박이다. 아워박은 살아 있을 때 잭슨 감독을 여러 차례 깎아내린 바 있다. 아워박은 "조던, 스카티 피펜, 코비 브라이언트, 샤킬 오닐을 데리고 우승하지 못할 감독이 어디 있는가"라며 자주 비아냥거린 바 있다. 그런데 이는 아워박 자신도 60년대 셀틱스를 지휘하던 시절 5명 이상의 명예의 전당행 선수를 보유하고 있었음을 간과한 발언이었다. 아워박은 이에 대해 "그들은 내가 키운 선수다"라고 반박한 바 있다.
잭슨 감독 밑에서 챔피언 반지 3개를 받았던 레이커스의 가드 데릭 피셔는 "잭슨 감독이 운이 좋아 9개의 챔피언 반지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그는 존경을 받을만한 감독이다."라고 말했다. ESPN라디오 해설가인 잭 램지 박사도 "잭슨 감독이 젠체하고 냉정하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그가 코치로서 능력이 없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라고 말했다. 시즌 중 레이커스에 합류한 포워드 파우 가솔은 "잭슨 감독은 영적이면서 지적이다. 그에게서 너무나 배울 게 많다."라고 극찬했다.
레이커스가 셀틱스와의 시리즈에서 승리해 생애 10번째 챔피언 반지를 받는다면 셀틱스의 전설 아워박의 기록을 경신하게 된다. 셀틱스 팬들은 따라서 "아워박을 위해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라고 외친다.
잭슨 감독이 10번째 챔피언 반지를 받으면 누가 최고의 감독인가에 관한 논쟁이 끝날 것으로 보인다. 한 농구 칼럼니스트는 "60년대의 챔피언 반지와 지금의 챔피언 반지는 그 가치 면에서 크게 다르다. 90년대와 2000년대에 챔피언 반지 10개를 받는다면 잭슨과 아워박 중 누가 더 위대한 감독인가에 대한 논쟁이 끝나게 된다"라고 말했다.
s2008년 6월5일: 60년대와 70년대에 뉴욕 닉스와 뉴저지 네츠에서 뛰었던 필 잭슨 감독은 은퇴 후 하부리그인 CBA에서 코치 수업을 받았다. CBA에서 코치가 된 첫해, 챔피언 등극을 이끌었던 잭슨 감독은 이후 NBA 진출을 노렸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이유는 NBA 구단주들이 그를 '반체제문화'에 동조하는 인물로 낙인찍었기 때문이었다. 잭슨 감독이 CBA에서 코치로 활동하다가 NBA로 오게 된 해는 1987년이었다. 시카고 불스의 어시스턴트 코치가 된 잭슨 감독은 1989년 이 팀의 감독으로 승격됐다. 그리고 1998년까지 이 팀의 감독으로 활약하며 6개의 챔피언 반지를 받았다. 잭슨 감독은 불스에서 텍스 윈터 코치를 만났다. 윈터 코치는 '트라이앵글 오펜스'를 고안해낸 인물이다.
잭슨을 싫어했던 사람들은 그가 마이클 조던 덕분에 챔피언 반지 6개를 받았다고 했지만 그의 리더십을 잘 모르고 하는 소리였다. 잭슨 감독이 불스에서 세운 팀 친화력은 놀라운 수준이었다. 선수들과 감독의 상호 존중하는 분위기는 '왕조'를 세울 수 있도록 했다. 왕조를 무너뜨린 인물은 다름 아닌 제리 크라우스 불스 단장이었다. 크라우스 단장은 잭슨 감독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을 거북하게 생각했고 그를 계속 견제했다. 팀 플로이드를 차기 감독으로 세운 크라우스는 결국 왕조가 몰락하는 원인 제공자가 됐다.
1년을 쉬게 된 잭슨 감독은 1999년 LA 레이커스의 감독이 됐다. 연봉과 조건 면에서 불스 시절과는 완전히 다른 파격적인 대우로 '라라 랜드'로 오게 된 잭슨 감독은 부임했던 시즌을 포함해 3년 연속 챔피언 등극을 이끌었다. 이전 감독들은 샤킬 오닐, 코비 브라이언트를 데리고 NBA 챔피언 결정전에도 진출하지 못했는데 같은 선수들을 데리고 그는 3회 연속 우승이라는 금자탑을 세웠다.
잭슨 감독은 팀 친화력을 만드는 데 뛰어난 지도자이면서 상대팀 그리고 심판들과의 심리전에서 고도의 전략으로 소속팀이 유리하게 이끌었다. 선수들에게 동기유발을 이끄는 능력도 뛰어난 잭슨 감독은 이 시대 최고의 감독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운이 좋아도, 아무리 좋은 선수를 데리고 있어도 10회 우승은 도저히 이루기 힘든 놀라운 일이다. 전 뉴욕 양키스 감독이었던 조 토리(현 LA 다저스)가 좋은 선수들을 많이 데리고 있었지만 우승횟수는 4회였다. 여전히 그는 위대한 감독으로 불린다. 수퍼스타들로 라인업을 꾸몄던 감독도 4회 우승으로 극찬을 받았는데 잭슨 감독의 9회 우승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10회 우승을 이룬다면 그는 전설적인 감독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전설을 보고 있다.
s2008년 6월13일 (NBA 챔피언 결정전에서 셀틱스에 패한 후): 감독의 머리싸움에서도 닥 리버스(사진 위)가 좀 더 나아 보였다. 리버스는 선수들에게 동기유발을 하는 말을 자주 하면서 격려했고 수비를 강조하면서 레이커스의 공격 흐름을 흩어놓았다. 레이커스의 '명장' 필 잭슨 감독은 4차전에서 20점차 리드를 지키지 못한 책임을 져야 했다. 그는 점수차가 좁혀졌음에도 타임아웃을 부르지 않고 셀틱스의 빠른 추격을 지켜보기만 했다. 이는 잭슨 감독이 오랫동안 가졌던 농구 철학이기에 비난할 수 없지만 황당하게 역전패를 당할 때 팬들은 아쉬움을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 잭슨 감독은 '어려운 상황에서는 선수들이 경기 흐름을 이해하고 선수들이 그 흐름을 조절해야 한다.'라는 독특한 농구 철학의 소유자다. 때로는 이러한 방식이 도움될 때가 있어 그 누구도 이를 바꾸라고 말을 할 수도 없다. [시리즈 끝]
연재/필 잭슨 |
2009/06/22 21:14 |
Posted by ICCsports 밝은터
필 잭슨 LA 레이커스 감독이 통산 10번째 챔피언 반지를 받게 됐다. 이는 실로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 감독이 미국 메이저 스포츠에서 10회 우승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금자탑을 세운 것이나 다름 없다. 필자는 지난 2005년부터 필자가 잭슨 감독에 관해 쓴 글을 정리해보았다.
s2007년 2월1일:레이커스는 (2007년 2월 당시) 10경기에서 5승5패로 부진했지만 시즌 성적은 28승18패로 아주 좋았다. 이는 서부 컨퍼런스 10위권의 팀이라는 미국 언론 농구 전문가들의 평가에 비춰볼 때 예상을 뛰어넘는 성적이다. 사실 레이커스의 당시 선수들을 보면 10위권 팀이라는 객관적 예상이 맞았다. 6위 팀은 아니었다. 예상 외로 4단계 차이가 나는 것은 역시 필 잭슨 감독의 지도력 덕분이었다고 할 수 있다.
s2007년 4월5일: 레이커스의 필 잭슨 감독은 코비 브라이언트가 고득점 행진을 했을 당시 '코비-다'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코비-다는 '코비'와 '레이다'의 합성어로 레이커스 선수들이 코비를 레이다의 중심으로 놓는 것을 비꼬는 듯한 잭슨 감독식의 표현이었다. 즉 선수들이 슛을 던질 생각은 하지 않고 코비에게만 패스하려는 경향을 지적한 것이었다. 잭슨 감독은 코비가 팔꿈치 가격으로 '더티 플레이어'라는 이미지가 굳어지자 이를 바꾸기 위한 시도를 한 것으로 고득점 행진을 풀이했다. 코비는 그러나 자신의 개인 홈페이지에서 "내가 원하는 것은 승리뿐"이라며 '승리'에 대한 욕심을 여러 차례 강조한 바 있다. 승리를 위해서라면 슛을 양보할 수도 소나기 슛을 쏠 수도 있다고 그는 말했다.
s2007년4월9일: 크리스 보시(당시 23세. 아래 사진)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랩터스의 파워포워드인 6피트10인치(208cm)의 보시는 2006년 7월 랩터스와 3년 연장 계약(4년째는 옵션)을 맺고 이 팀의 리더가 됐다. 연장 계약을 맺기 전 LA 레이커스의 필 잭슨 감독은 보시를 공개석상에서 극찬하며 추파를 던진 바 있다. 이 발언으로 잭슨 감독은 NBA 사무국으로부터 벌금령을 받았다. 보시와 같은 믿을만한 장신 선수가 필요했던 잭슨 감독의 발언이 나온 후 랩터스는 곧바로 연장 계약을 통해 보시에 4년 동안 약 6천5백만 달러를 주기로 약속했다.
s2007년4월30일: 90년대 마이클 조던, 스카티 피펜, 필 잭슨 트리오가 이끌었던 불스는 그야말로 '무적함대'였다. 무려 6차례나 챔피언이 됐으니 상세한 설명이 필요 없다. 조던이 두 차례 은퇴를 하지 않았더라면 불스는 10년 동안 8-9회의 우승도 가능했을 팀이다. 조던이 은퇴하고 잭슨 감독이 떠난 후 피펜도 휴스턴 로키츠로 가면서 불스는 '무적함대'에서 '나룻배'로 전락했는데 리그의 조롱거리가 됐던 불스는 1998-99시즌부터 2003-04시즌까지 119승341패라는 놀라운(?) 성적을 냈다.
s2007년5월30일: 넘버2가 필요해. '포스트 샤크(Post-Shaq)의 LA 레이커스는 NBA에서 가장 뛰어난 선수인 코비 브라이언트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팀이다. 여기에 NBA 챔피언 반지 9개를 받은 필 잭슨 감독과 그 사단이 코칭 스태프로 있다. 그렇다면 레이커스는 왜 시카고 불스와 같은 '왕조'를 탄생시키지 못하는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레이커스에는 조던급 선수는 있어도 스카티 피펜, 존 팩슨, 스티브 커와 같은 선수들이 없기 때문이다.
s2007년 5월28일: 마이클 조던이 '농구 황제'가 되기까지 그의 옆에는 필 잭슨 감독이 있었다. 르브론 제임스도 자신의 필 잭슨을 찾았다. 바로 마이크 브라운(당시 37세. 아래 사진) 감독이다. 1970년생인 브라운 감독은 NBA에서 두 번째로 젊은 감독이다. 나이가 더 어린 감독은 뉴저지 네츠의 로렌스 프랭크로 같은 1970년생이지만 브라운보다 몇 개월 먼저 태어나 최연소 감독이 됐다. 브라운은 캐벌리어스가 '정제된 팀'이 되도록 한 지도자다. 젊은 선수들이 중심인 캐벌리어스가 올해 동부 컨퍼런스 결승 시리즈에 진출한 이유는 브라운이 강조한 수비와 리바운드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필 잭슨과 지도 스타일이 비슷하다.
s2007년9월26일: 과연 바이넘은 꾸준히 기여하는 센터가 될 수 있을까. 필 잭슨 레이커스 감독은 바이넘이 평균 15득점, 10리바운드를 기록하는 선수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렇게 된다면 코비 브라이언트도 불만을 터뜨릴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라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보인다. 브라이언트는 시즌 중에 트레이드를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s2007년10월31일: 성폭행 사건에 연루됐을 때도 없었던 야유를 코비 브라이언트가 들었다. 브라이언트(29. LA 레이커스)는 30일 열렸던 2007-08시즌 개막전 휴스턴 로키츠 전에서 팬들에게 소개되자 야유의 소리를 들었다. 스테이플스 센터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필 잭슨 감독도 깜짝 놀랐다. "이게 코비한테 하는 야유 맞나?"라고 코치에게 물어봤다고 한다. 팬들이 바보가 아님을 보여준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여름 내내 레이커스를 떠나고 싶다는 보도를 들었던 팬들은 더는 '조건 없는 사랑'을 보낼 수 없게 됐다. 물론 경기가 시작되고 코비가 맹활약하자 "MVP!" "코~비, 코~비"의 외침이 있었지만 팬들의 마음은 이전 같지 않았다.
s2007년11월5일: 챈들러는 필 잭슨 LA 레이커스 감독이 극찬하는 선수다. 잭슨 감독은 레이커스 선수들에게 챈들러의 리바운드하는 자세 및 움직임을 필름을 통해 체크하라고 강조한다고 한다. 챈들러는 열정이 넘치는 장신 선수로 라시드 월러스급의 선수가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s2007년11월19일: LA 레이커스는 2006년 NBA 신인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26번으로 파마를 지명했다. 당시 미치 컵첵 레이커스 단장은 "파마가 1라운드 26번까지 내려올 줄은 몰랐다"며 계획에 없는 지명이었음을 밝혔다. NBA 전문가들은 파마가 전체 20번 이내로 지명될 줄 알았고 레이커스가 그를 선택할 기회는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필 잭슨 레이커스 감독은 신인을 잘 기용하지 않기 때문에 파마는 신인 시즌을 평범하게 보냈다. 파마는 그래도 경기 평균 15분을 뛰었는데 잭슨 감독으로서는 신인에게 상당히 많은 출전시간을 줬다고 할 수 있다
s2007년12월12일: 무명의 기간을 거쳐 NBA 스타가 된 선수 중 대표적인 인물은 벤 월러스(시카고 불스)다. 그는 대학 농구 2부리그에 속했던 버지니아 유니온 출신으로 대학을 나와 드래프트에서 지명되지 못해 이탈리아 프로리그에서 잠시 뛰었다. 2007년 현재 월러스는 NBA 최고의 빅맨 중 한 명이다. 뉴저지 네츠의 대럴 암스트롱도 철저한 무명이었다가 뒤늦게 NBA에 합류해 이름을 날린 선수다. 암스트롱도 마이너리그와 유럽 리그를 거쳐 NBA에 입문할 수 있었다. 이 밖에 팀 레글러, 잔 스탁스, 라자 벨, 스티븐 잭슨, 스무시 파커, 앤소니 파커 등이 일종의 마이너리그였던 CBA를 거쳐서 NBA에 입문했던 선수들이고 필 잭슨, 플립 선더스, 조지 칼, 짐 베이하임 등 명장들은 CBA에서 감독 수업을 받은 바 있다.
연재/필 잭슨 |
2009/06/18 11:10 |
Posted by ICCsports 밝은터
필 잭슨 LA 레이커스 감독이 통산 10번째 챔피언 반지를 받게 됐다. 이는 실로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 감독이 미국 메이저 스포츠에서 10회 우승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금자탑을 세운 것이나 다름 없다. 필자는 지난 2005년부터 잭슨 감독에 관해 쓴 글을 정리해보았다.
s 2006년 1월17일: 샤킬오닐(당시33세. 마이애미히트)이신인의무서움을잠시나마경험했다. 오닐을잠시당황하게했던선수는 LA 레이커스의 10대선수앤드루바이넘(당시18세). 16일 LA 스테이플스센터에서열린히트와레이커스의대결에서바이넘은잠시출전기회를얻었는데여기서리그최고의 '공룡센터'와운명적인만남을가졌다. 주전센터크리스밈의파울수가높아지자레이커스의필잭슨감독은벤치에앉아있던후보센터바이넘을투입했고그가코트에모습을보이자 LA 팬들은일제히환호성을올렸다. 오닐과의대결에대한기대감때문이었다. 잭슨감독은경기가시작되기전 "바이넘이오닐을어떻게상대하는지보고싶다"고말했다고하는데실제그는자신의생각대로 18세의선수를중요한경기에내보냈다. (주: 당시에는바이넘에대한기대가컸다. 3년이지난현재바이넘은기대했던것만큼자라지않았다. 그럼에도레이커스구단은그에게큰기대를걸고있다.)
s2006년 4월25일: 필잭슨(현 LA 레이커스감독)은수년전 "단장이되고싶지않은가"라는한기자의질문에 "단장은거짓말을많이해야하는직업이기에원치않는다"고답변했다. 프로스포츠의단장은자신이속한집단을보호하기위해어쩔수없이거짓말을해야한다. 그런사람에게 "당신은거짓말쟁이야(You are a liar)"라고하는것은무리한주장이다. '진실과거짓' 사이에는아주 '얇은선(thin line)'이있다. 단장이거짓말을밥먹듯한다면그는 '거짓말쟁이'다. 그러나 '집단'을위해어쩔수없이기자의질문에거짓답변을했다면그단장은손가락질을받을이유가줄어든다. 물론 '얇은선' 때문에 '진실과거짓'은그것을쉽게넘나드는사람들에의해오용되는맹점이있는것은사실이다.
s2006년 5월9일: 스포츠지도자가정치인으로탈바꿈하는경우가종종있는데대표적인인물은빌브래들리(위 사진. 당시62세)일것이다. NBA 올스타출신인브래들리는 3선상원의원으로지난 2000년에는민주당대통령후보예비선거에출마했다가앨고어에밀려난바있는데그는이후대통령선거에재도전하겠다는의지를보였다. 브래들리는필잭슨 LA 레이커스감독와절친한사이다. s
연재/필 잭슨 |
2009/06/18 10:31 |
Posted by ICCsports 밝은터
필 잭슨 LA 레이커스 감독이 통산 10번째 챔피언 반지를 받게 됐다. 이는 실로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 감독이 미국 메이저 스포츠에서 10회 우승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금자탑을 세운 것이나 다름 없다. 필자는 지난 2005년부터 잭슨 감독에 관해 쓴 글을 돌아보았다.
s 2005년 7월1일:레이커스는 일단 제한 자유계약 선수인 루크 월튼과 재계약하려고 할 것이다. 제한 자유계약 선수는 다른 팀이 어떤 조건을 제시했을 때 이전 소속팀이 똑같은 조건으로 매치(match)하면 원소속팀에 남아야 하는 선수다. 제한된 자유인 것이다. 레이커스는 필 잭슨 감독의 시스템에 익숙하고 잭슨이 좋아하는 월튼을 최대한 잡을 것으로 보인다. [주: 잭슨 감독은 월튼을 높이 평가하는 것 같습니다. 그가 부진해도 계속 기회를 주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죠. 지금까지 인연이 이어오네요. 한 번 믿으면 끝까지 믿는 믿음의 농구를 하는 필 잭슨.]
s 2005년 8월24일: 필 잭슨 레이커스 감독은 과거에도 작은 포인트 가드보다는 장신 가드를 좋아했는데 론 하퍼와 브라이언 쇼가 대표적인 선수였다. 키가 크면서 드리블을 자주 하지 않고 시야가 넓은 포인트 가드가 트라이앵글 오펜스에 적격인데 애런 매키는 잭슨 감독이 찾았던 바로 그런 선수다. 엄밀히 말한다면 트라이앵글 오펜스에서는 전통적인 포인트 가드가 없다고 보는 것이 옳다. 포인트 가드는 보통 ‘Initiator(개시자)'로 불리는데 개시자라고 하는 것은 공격 시 첫 번째 패스를 하기 때문이다. (주: 매키는 그러나 부상으로 거의 뛰지 못했다. 잭슨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s2005년 10월21일: 농구팬이라면 제리 라인스도프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라인스도프는 그 유명한 시카고 불스의 구단주이다. 마이클 조던과 필 잭슨에게 매달 수표(check)를 줬던 그 사람이 바로 화이트삭스의 구단주다. 라인스도프는 스포츠계의 짠돌이로 잘 알려졌다. 불스가 NBA를 지배했던 당시 잭슨 감독의 연봉 대폭 인상 요구를 거절해 그를 떠나게 했는데 이는 조던 은퇴의 원인이었고 불스 구단은 와해했다. 라인스도프는 불스의 성공을 통해 엄청난 부를 챙겼지만 이를 선수에게 환원하지 않는다고 해서 엄청난 비난을 받았던 인물이다. (주: 라인스도프는 지금도 불스와 화이트삭스의 구단주로 일하고 있다. 화이트삭스는 몇 년 전 챔피언 자리에 올라 그는 두 스포츠에서 챔피언 트로피를 받은 구단주가 됐다.)
s2005년 10월25일:LA 팬들의 관심은 역시 LA 레이커스에 쏠리고 있다. '명장' 필 잭슨 감독이 무려 1천만 달러의 연봉을 받기로 하고 복귀했기 때문에 팬들은 적지 않은 기대를 걸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냉정하다. 장밋빛 전망을 하기에는 팀 전력이 평범하다. 레이커스가 그렇다고 플레이오프에 나가지 못할 팀은 아니다. 옛 영광을 재현시키기에는 부족함이 있다는 뜻이다. (주: 실제 레이커스는 당시 이렇다할 성적을 올리지 못했다.)
s2005년 11월1일: 필 잭슨 LA 레이커스 감독이 자서전에서 코비 브라이언트를 비난하자 주류 언론은 이를 신나게 써댔다. 그러나 책을 끝까지 읽어보면 일방적인 미움보다는 '애증'이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잭슨은 이제 그 '애증'을 제자에 대한 '사랑'으로 승화시킬 것인지, 코비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관심사다. 미 주류 언론은 두 사람이 싸우기를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야 언론 비즈니스가 잘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자는 두 사람이 서로에게 조심스러운 마음이 있기 때문에 쉽게 관계가 깨지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주: 이후 두 사람의 관계는 매우 돈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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