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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조던 연재 라인업 (글: 밝은터)
2009/09/08 - [연재/마이클 조던] -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1)-조던은 말이지...
2009/09/09 - [연재/마이클 조던] -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2)-가장 위대한 선수
2009/09/10 - [연재/마이클 조던] -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3)-마이클, 군인이 돼라!
2009/09/11 - [연재/마이클 조던] -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4)-불스와 NBA의 희망
2009/09/11 - [Just a Note] - 마이클 조던 명예의 전당 헌액 행사 (동영상)
2009/09/12 - [연재/마이클 조던] -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부록)-명예의 전당 연설
2009/09/15 - [연재/마이클 조던] -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5)-득점기계&슬램덩크 챔프
2009/09/16 - [연재/마이클 조던] -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6)-필 잭슨&피펜과의 첫 만남
2009/09/17 - [연재/마이클 조던] -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7)-'The Shot'
2009/09/22 - [연재/마이클 조던] -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8)-성장통
2009/09/23 - [연재/마이클 조던] -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9)-'나쁜녀석들'너머
2009/09/25 - [연재/마이클 조던] -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10)-마이클 vs. 매직 존슨
2009/09/26 - [연재/마이클 조던] - 마이클 조던 연재 참고 도서 목록
2009/09/26 - [연재/마이클 조던] -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11)-불스 마침내 첫 우승!
2009/09/30 - [연재/마이클 조던] -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12)-새 라이벌 등장!
2009/10/01 - [연재/마이클 조던] -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13)-조던 vs. 드렉슬러
2009/10/02 - [연재/마이클 조던] -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14)-조던과 원조드림팀
2009/10/05 - [연재/마이클 조던] -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15)-불스 3년 연속 우승!
2009/10/06 - [연재/마이클 조던] -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16)-야구 선수가 되다(I)
2009/10/08 - [연재/마이클 조던] -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17)-야구 선수가 되다(II)
2009/10/12 - [연재/마이클 조던] -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18)-조던 vs 샤킬 오닐
2009/10/16 - [연재/마이클 조던] -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19)-오 놀라운 72승
2009/12/01 - [연재/마이클 조던] -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20)-조던 vs. '우편배달부'
2009/12/03 - [연재/마이클 조던] -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21)-무적함대 역사 속으로(I)
2009/12/04 - [연재/마이클 조던] -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22)-무적함대 역사 속으로(II)
2009/12/05 - [연재/마이클 조던] -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23)-조던 은퇴 선언
2009/12/07 - [연재/마이클 조던] -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24)-조던 두 번째 복귀&은퇴

Michael Jordan joins The Wizards
 마이클 조던(중앙)과 에이브 폴린(오른쪽) 전 위저즈 구단주.

마이클 조던의
최종 은퇴후 워싱턴 위저즈의 에이브 폴린(2009 11월 작고) 구단주는 조던을 구단 사장으로 두질 않았다. 2003 57일 조던은 위저즈를 떠났다. 당시 조던이 해고된 일은 충격적이었다. 조던이 위저즈에 들어와서 이 구단은 흑자경영 구단이 됐는데 공신을 해고하는 것처럼 여겨졌다. ‘농구의 황제가 위저즈에서 선수로 뛰기 전까지 이 구단은 4천만 달러의 적자를 내는 구단이었다. 조던의 존재 하나로 위저즈 구단은 3천만 달러의 흑자를 보게 됐다. 사람들은 폴린 구단주가 냉정하게 조던을 내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당시 상황에서는 폴린의 결정이 옳았다고 할 수 있다. 조던은 위저즈 구단의 사장 및 단장으로 일하면서 자신이 직접 코트에서 뛰는 것 외에는 경영자로서 뛰어난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콰미 브라운을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1번으로 지명한 것과 제리 스택하우스를 영입하고 리처드 해밀턴을 디트로이트로 보낸 것 등은 옳지 않은 판단이었다. 폴린이 결정적으로 조던을 해고한 이유는 그가 주로 시카고에서 머물면서 위성 경영을 한 것에 불만이 컸기 때문이다. 워싱턴 D.C.에 상주하지 않고 시카고에서 전화로 구단을 경영하는 것은 폴린 구단주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폴린은 조던이 선수로서 은퇴한 후에 경영자가 되어 열심히 일을 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

폴린은 어니 그런펠드를 사장으로 고용했고 이후 위저즈는 4년 동안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고 젊고 화려한 팀을 만들 수 있었다.

조던은 루키의 실수를 했다고 볼 수 있다. 한 보도에 따르면 조던은 경영자로서 프런트 오피스 동료와 사이가 좋지 않았고 선수들과도 관계가 소원해졌다고 한다. 최고의 선수가 최고의 지도자가 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해고된 후 조던은 그야말로 실업자신세가 됐다. 물론 계속 이어지는 광고 모델 활동은 했지만 농구에서 잠시 떨어져 있었다.

Charlotte Bobcats vs Boston Celtics
 밥캐츠의 주주인 조던이 레이몬드 펠튼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그러던 중 샬럿 밥캐츠 구단에서 주주가 됨과 동시에 구단 경영진에 들어갈 기회가 생겼다. 그는 2006 615일 밥캐츠 구단의 주주로서 농구계로 돌아왔다. 주주가 되면서 그는 자신이 마케팅에 활용되기를 원치 않았다. 구단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조던은 대신 밥캐츠 구단의 매입에 관심을 보였다. 이 구단의 흑인 구단주인 로버트 존슨은 구단 매각을 선언했고 조던은 투자그룹을 만들어 구단 매입에 관심을 표명했다. 구단 매각/매입은 2009 12월 현재 진행 중이다.

조던은 이 구단의 주주가 되고 구단 경영에 참여하자마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다. 그는 지난 2007 313일 버니 비커스태프 감독을 해고한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샘 빈센트 신임 감독을 영입하는데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빈센트 감독도 역시 실패작이었다. 2008 4월 빈센트 감독은 해고됐고 밥캐츠는 전설적인 감독인 래리 브라운을 영입했다. 브라운 감독은 기대만큼 해줬다. 그는 약팀을 강하게 만드는 데 능력이 뛰어난 감독이다. 물론 뉴욕 닉스에서는 실패하고 말았지만.

조던은 2006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애덤 모리슨을 전체 3번으로 지명해 보는 눈이 없다는 지적을 받았다. 모리슨은 곤자가대학 시절에는 대단한 슈터였지만 프로에서는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조던은 그러나 2008년 드래프트에서는 D.J. 어거스틴을 지명해 옳은 판단이었다는 평가를 받았고 라자 벨, 보리스 디아우를 영입해 브라운 감독이 뜻을 펼칠 수 있도록 도왔다.



밥캐츠의 주주가 된 얼마 후인 2006 1229일 조던은 17년 동안 살았던 아내 후아니타와 이혼을 하게 됐다.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으면서 후아니타는 무려 16,800만 달러를 위자료로 받았다. 이는 유명인과의 이혼에서 받게 되는 최고액수였다. 이전까지 최고액수는 닐 다이아몬드(가수)가 마샤 머피에게 준 15천만 달러였다. 스티븐 스필버그(영화감독)도 이혼하면서 전 아내 에이미 어빙에게 무려 1억 달러를 위자료로 지불했다. 

조던은 2009 46일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선수로 선정됐다.

조던은 남은 생애는 구단주 조던의 삶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가 과연 밥캐츠의 구단주가 될 것인가. 그는 경영자로서 과연 어떤 인생을 살 것인가. 팬들의 관심은 여전히 떠나지 않고 있다. [연재 끝]

밝은터 코멘트: 마이클 조던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댓글을 달아주시고 격려를 해주시고 추천 버튼을 눌러주신 네티즌 동료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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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oe 2010/04/25 05: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황제입니다...

    다시한번 느끼게되네요..

    좋은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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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hael Jordan Hints at Comeback

마이클 조던 연재 라인업

2009/09/08 - [연재/마이클 조던] -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1)-조던은 말이지...

2009/09/09 - [연재/마이클 조던] -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2)-가장 위대한 선수
2009/09/10 - [연재/마이클 조던] -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3)-마이클, 군인이 돼라!
2009/09/11 - [연재/마이클 조던] -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4)-불스와 NBA의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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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05 - [연재/마이클 조던] -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23)-조던 은퇴 선언




1999 1월 자신의 복귀 가능성은 0.01%라고 암시했던 조던이 2년이 지난 후 다시 복귀를 놓고 고민했다. 2001년 여름 조던은 두 번째 복귀를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NHL 스타였던 마리오 르뮤가 은퇴 선언 후 복귀한 것을 보고 자신도 그런 일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2001년 봄과 여름 조던은 몸만들기에 한창이었다. 그가 복귀를 노리는 팀은 바로 자신이 구단 경영 사장으로 있던 워싱턴 위저즈였다. 위저즈 구단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한 복귀 시도였다.

그는 복귀를 위해 자신이 가장 편하게 생각하는 덕 콜린스를 위저즈 감독으로 영입했다. 콜린스는 2001년 여름 조던의 연습을 지켜본 후 “농구 게임을 너무나 쉽게 한다”고 칭찬했다. 콜린스 감독은 “조던은 한 동작도 그냥 지나치지 않으며 마치 슬로우 모션을 보면서 게임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경기 전체를 보는 눈이 여전히 뛰어나다는 것이다.

조던은 그해 여름 워싱턴 포스트지와의 인터뷰에서 “아직 복귀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당시두 차례 가진 미니캠프에서 ‘합격’ 판정을 받았다. 조던은 복귀 결정을 하기 전에 갈비뼈 부상을 당했다. 그는 시카고에서 연습게임 도중 갈비뼈 부상을 당해 몇 주 동안 뛰지 못한 바 있다.

조던은 2001 7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복귀 결정을 위해 한 달 반 정도의 시간을 달라”고 말했다. 그해 9월 중순께 컴백 결정을 하겠다는 것이었는데 이는 트레이닝 캠프가 시작되는 10월을 며칠 남겨두지 않은 시기다. 조던은 “그 어느 누구의 충고도 듣지 않겠다. 나는 내 몸을 잘 알고 있고 또 그것에 대해 정직하다. 그렇게 때문에 내가 생각한 수준이 된다면 컴백을 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조던은 자신의 몸이 은퇴할 당시의 수준이 되지 않는다면 컴백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조던과 함께 연습 경기에 참가했던 선수들과 덕 콜린스 위저즈 감독은 “조던은 지금도 NBA에서 뛸 수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조던은 그런 발언에 만족해하지 않았다.

조던은 장고 끝에 2001 925일 복귀를 선언했다. 그는 짧은 성명서를 통해 “내가 좋아하는 게임에 선수로서 복귀하게 됐다. 나는 특별히 워싱턴 위저즈에 대해 기쁘게 생각한다. 나는 우리 팀이 플레이오프 진출이 가능하다는 확신이 생겼다. 젊은 선수들을 가르치고 그들의 게임을 더욱 수준 높게 만들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는 생각은 나로 하여금 컴백 결정을 내리게 했다고 말했다.

이에 NBA 커미셔너인 데이비드 스턴은 “나는 마이클 조던의 컴백을 환영한다. 마이클은 언제나 전 세계 농구팬들에게 기쁨을 선사 했고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모두가 작은 기쁨이라고 영위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환영의 뜻을 밝혔다.

그의 복귀에 대한 다른 이들의 반응은 다음과 같았다.

 
“조던이 뉴 탑 건(New Top Gun)들과 대결을 펼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 될 것이다.- 매직 존슨

“조던의 컴백은 농구라는 스포츠 게임을 위해 좋은 일이다. 나는 그러나 약간 실망 했다. 그는 챔피언 레이커스를 위해 뛰라는 나의 초대를 거절 했다. (웃음)- 필 잭슨

“현재 리그 측과 경기 중계 일정 조정을 위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우리는 리그와 함께 조던의 존재를 세계에 알리기 위한 노력 할 것이다”- TBS 스포츠 마크 라자러스

“나는 그가 코트로 돌아와 플레이 하는 모습을 정말 보고 싶었다. 최근 그와 대화를 나눴는데 마이클은 결심이 선 듯 했다. 마이클은 잘 할 것이다. 비록 잃는 것도 있겠지만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이다”-줄리어스 어빙

“조던이 컴백해서 기쁘다. 그의 컴백이 NBA에 좋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기대한다.-제리 크라우스 불스 단장

“그는 여전히 리그 최고의 선수가 될 것이다. 마이클로 인해 위저즈는 플레이오프 진출 팀이 될 것이다.-제프 밴 건디 뉴욕 닉스 감독

“그가 행복하고 건강하길 바란다. 그가 NBA에서 다시 뛰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다.-래리 브라운 필라델피아 감독

“그는 여전히 최고의 선수가 될 것이다.-닥 리버스 올랜도 감독

“그가 오랫동안 코트를 떠나 있었지만 여전히 상대팀에겐 위협이 될 것이다. 그는 그만큼 현명한 선수다.-애런 매키 필라델피아 76ers 선수

“마이클은 게임당 평균 20점을 올릴 것이다. 위저즈는 지난해 19승에서 두 배 이상의 승리를 챙길 것이다.-딕 바이탤 ESPN 농구 전문가.

 

하지만 그의 복귀에 대해 염려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제 명성을 깎아내리는 일이라는 우려였다.

조던은 이에 대해 “칼럼니스트와 찰스 바클리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이는 노-(No-Win)의 상황이라고 지적을 했지만 나는 그들의 말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고 말했다.

조던은 “내 마음은 컴백하는 것으로 기울어졌고 전 처럼 잘못한다고 하더라도 내가 받은 챔피언십 링을 아무도 가져갈 수 없는 것이고 내가 했던 것은 역사로 남을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조던은 “98년 은퇴를 했을 때 나는 완전히 포기할 준비가 됐다고 말한 적이 없다. 이번 컴백은 마지막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컴백을 하지 않을 경우 평생 후회할지도 몰라 이렇게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조던은 실패를 두려워 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는 자신이 전처럼 큰 성공을 거둘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조던은 젊은 선수들로부터 스포트라이트(spotlight)를 빼앗고 싶지 않고 100% 위저즈에 자신을 맞춰갈 것이라고 다짐 했다. 그는 또한 82 전경기에 출전할 것을 밝혔다.

조던은 복귀 첫 시즌에 당장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지난 시즌 1963패를 기록한 위저즈가 50승을 거둔다면 정말 놀랄 것이라고 말했다.

조던의 복귀는 여전히 화려했다. 그가 복귀를 선언하자 2001-02시즌을 앞두고 열리는 시범경기에 표가 엄청나게 팔렸다. 디트로이트에서는 시범경기치고는 이례적으로 19천장의 티킷이 판매됐고 마이애미에서도 시범경기 입장권이 매진됐다.



조던은 자신의 2001-02시즌 연봉을 9.11 사태 희생자들의 가족을 위해 쓰겠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시즌이 시작했다. 조던에게 가장 감동적인 경기가 2002 119일 열렸다. 바로 시카고 경기다.

그는 울고 싶지 않았지만 이 경기에서 울고 말았다. 컴백 후 첫 시카고 경기에서 불스의 장내 아나운서인 레이 클레이는 경기 전 조던을 소개했고 유나이티드 센터를 꽉 메운 시카고 팬들은 약 3분간 기립 박수를 보냈다.


단순한 박수가 아닌 함성과 외침이
3분간 계속 됐다. 조던은 시카고 팬들의 환대를 외면하려고 했지만(경기에 영향을 끼칠까봐) 결국 눈가에 눈물이 맺혀졌다. 그는 바닥을 쳐다 보면서 입술을 꽉 물었다. 울음을 참기 위해서였다.


기립 박수가 계속되자 조던은 마침내 관중석을 쳐다 보았고 그의 눈가는 이미 눈물로 흥건히 젖어 있었다
. 그는 경기장을 쭉 훑어 보면서 팬들에게 미소를 보냈다.


경기장엔 갖가지 내용이 씌어있는 응원 사인판을 들고온 팬들이 많았다
. Thanks, Mike."라고 씌어 있는 글귀는 더욱 조던을 감동 시켰다. 경기가 시작된 후에도 시카고 팬들의 ‘조던 사랑’은 대단했다. 그가 공을 잡을 때 마다 팬들은 환성을 보냈고 그를 응원했다.

 

그가 1쿼터 738초를 남겨두고 첫 필드골을 성공시키자 팬들은 마치 승부를 결정내는 슛을 성공시킨 것처럼 환호했다. 조던이 은퇴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두 제리(제리 크라우스, 제리 라인스도프)는 이날 경기장에 없었다. 불스의 크라우스 단장과 라인스도프 구단주는 각각 자신들의 일을 보기 위해 시카고를 떠난 상황이었다.

조던은 이에 대해 “그들은 분명히 할 일이 많을 것이다. 그들에 대해 나쁘게 생각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조던은 “관중들이 환호를 보내고 계속 응원을 해주니 플레이 하기가 어려웠다. 시카고를 상대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이는 마치 친척에 대항해서 싸우는 것 같다. 강렬한 플레이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조던은 팬들의 응원에 힘입어 복귀 시즌에
22.9득점, 5.2어시스트, 1.42가로채기를 기록했다. 그러나 나이는 속일 수 없었다. 그는 60경기를 뛴 후 오른쪽 무릎 문제로 더는 뛸 수 없었다.

조던은 85년 시즌 중에 발 부상으로 64경기에 결장한 이후 단 한번도 한 시즌 4경기 이상에 빠진 적이 없었다. 39세가 된 조던은 올시즌 약팀 위저즈를 플레이오프 진출 가능팀으로 만들어 놓으며 '역시 조던'이라는 찬사를 들었다. 그는 무릎 통증 속에서도 계속 뛰는 것을 고집 했고 결국엔 수술이 필요한 지경에 까지 오게 된 것이다. 무릎에는 물이 차 계속 빼내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 됐다.

조던의 소속팀인 위저즈는 3745패로 시즌을 마쳤고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조던은 다음 시즌을 마지막으로 진짜은퇴를 하기로 했다.

 

조던은 복귀 후 두 번째 시즌인 2002-03시즌에 올스타전에 출전했다. 개인 통산 14번째 출전이었다. 조던은 올스타전에 출전, 역대 올스타전 최다 득점자로 기록됐다. 마지막 시즌에 그는 82경기에 모두 출전했고 평균 20득점, 6.1리바운드, 1.5스틸을 기록했다. 야투 성공률 45%였다. 이 시즌 중에 그는 40세가 됐다. 그는 2003 221일 경기에서 43득점을 기록, 40세 선수 중 처음으로 이렇게 많은 점수를 낸 선수로 기록됐다.

조던 덕분에 위저즈는 전 경기 입장권 매진을 기록했고 NBA에서 가장 인기 있는 구단 2위에 올랐다. 위저즈는 조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2년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그는 동료 선수의 집중력 부족과 강인함이 없는 경기를 펼치는 것에 불만이 많았다.

2002-03시즌은 마치 조던 은퇴 기념 경기가 열리는 시즌 같았다. 그가 찾았던 도시마다 조던을 선수로서 마지막으로 보는 팬들은 기립박수를 보냈다. 특히 시카고 팬들은 무려 4분 동안 기립박수를 보냈다. 마이애미 히트 구단은 그의 23번 등번호를 영구결번으로 처리했다. 조던은 히트에서 단 한 번도 뛴 적이 없었다. 조던은 2003 416일 필라델피아 전을 끝으로 선수로서 영원히 코트를 떠났다. 



조던 복귀 후 밝은터가 쓴 2001년 11월27일 기사

마이클 조던의 컴백에 대한 회의론이 대두되고 있다.

조던이 컴백을 선언했을 당시만 해도 많은 농구 팬들과 전문가들은 “이제부터 NBA의 인기는 98년 처럼 치솟을 것이다”라고 예견했는데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결과는 영 딴판이었다. 이유는 단 한가지, 조던이 소속된 팀인 워싱턴 위저즈가 극도의 부진을 보였기 때문이다.

위저즈는 시즌 시작 후 첫 10경기에서 2승8패를 기록하며 조던이 코트에 없었던 지난해와 같은 성적을 냈다. 조던의 컴백 발표 후 NBC-TV와 TBS/TNT 등 전국으로 NBA 경기를 중계하는 방송사들은 위저즈 경기를 대거 중계 일정에 포함시켰는데 이는 결과적으로 비난을 받는 원인이 됐다. 밀워키 벅스의 스타 플레이어 레이 앨런과 LA 레이커스의 감독 필 잭슨은 “위저즈 경기를 전국 방송으로 보여주기에는 그들이 아직 덜 준비돼 있는 것 같다”고 일침을 가했다.

NBC의 한 관계자는 “조던이 컴백해서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며 볼멘 소리를 했고 일부 언론에서는 “조던이 컴백을 후회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추측 기사를 쓰기도 했다.

한 NBA 칼럼니스트는 “위저즈 홈경기 관중이 늘고, 그들의 원정경기 역시 매진되는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이런 추세가 얼마나 이어질 지 의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과연 조던의 예전 같지 않은 플레이와 위저즈 선수들의 형편 없는 경기를 보기 위해 위저즈 경기에 채널을 고정할 시청자들이 몇명이나 될 지 궁금하다”라며 일침을 가했다.

또 다른 칼럼니스트는 “조던을 존경하고 그의 컴백 동기를 존중하긴 하지만, 그가 고전하는 경기를 보기 위해 TV를 켤 정도는 아니다”라며 지금의 상황을 “목이 쉰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공연을 보는 것과 같다”고 표현했다.

조던은 올시즌 게임당 평균 26득점, 6.6리바운드, 4.7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여전히 리그 톱10안에 드는 실력을 선보이고 있지만 문제는 팀 동료들이 주눅이 들어 제대로 플레이를 못하는데 있다.

위저즈 선수들은 실질적으로 자신들에게 월급을 지급하는 ‘농구 황제’ 조던과 함께 뛴다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다. 더그 콜린스 위저즈 감독과 조던이 젊은 선수들에게 더 많은 기회와 조언을 하면서 ‘원맨팀’이 아닌 ‘함께 하는 팀’을 만들어가는데 주력하지 않는다면 위저즈는 시즌 40승은 커녕 30승도 힘들게 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다. [밝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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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hael Jord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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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08 - [연재/마이클 조던] -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1)-조던은 말이지...
2009/09/09 - [연재/마이클 조던] -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2)-가장 위대한 선수
2009/09/10 - [연재/마이클 조던] -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3)-마이클, 군인이 돼라!
2009/09/11 - [연재/마이클 조던] -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4)-불스와 NBA의 희망
2009/09/11 - [Just a Note] - 마이클 조던 명예의 전당 헌액 행사 (동영상)
2009/09/12 - [연재/마이클 조던] -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부록)-명예의 전당 연설
2009/09/15 - [연재/마이클 조던] -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5)-득점기계&슬램덩크 챔프
2009/09/16 - [연재/마이클 조던] -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6)-필 잭슨&피펜과의 첫 만남
2009/09/17 - [연재/마이클 조던] -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7)-'The Shot'
2009/09/22 - [연재/마이클 조던] -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8)-성장통
2009/09/23 - [연재/마이클 조던] -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9)-'나쁜녀석들'너머
2009/09/25 - [연재/마이클 조던] -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10)-마이클 vs. 매직 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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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26 - [연재/마이클 조던] -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11)-불스 마침내 첫 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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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03 - [연재/마이클 조던] -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21)-무적함대 역사 속으로(I)
2009/12/04 - [연재/마이클 조던] - 마이클 조던 '농구황제 인생'(22)-무적함대 역사 속으로(II)




마이클 조던은 NBA 직장폐쇄가 끝난 1999년 1월 중순 은퇴를 선언했다. 정확한 은퇴선언일은 1999년 1월13일이다. .조던은 조용히 은퇴를 선언하려고 했으나 그동안 성원해준 팬들과 언론에 공식적으로 알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정식 은퇴 기자회견을 가졌다고 했다. 

은퇴 선언 기자회견에서 조던은
최고의 선수가 되려고 노력했다. 한 개인이 이룰 수 있는 것은 다 이뤘다고 본다. 더는 농구 선수로서 뛸 도전거리가 없다고 말했다.

첫 번째 은퇴를 선언한 이후 그의 족적을 살펴보면 조던의 말대로 그는 한 농구선수가 이룰 수 있는 것은 다뤘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993 6 20일: 불스는 피닉스 선스를 꺾고 3년 연속 NBA 타이틀을 따냈다. 조던은 NBA 파이널 MVP 3년 연속 받은 첫 번째 선수가 됐다.

1993 83일:  조던 아버지의 시체가 노스 캐롤라이나에서 발견됐다. 그는 7 23일 사살된 것으로 밝혀졌다.

1993 10 6 : 조던은 농구계에서 은퇴를 발표했다. 그의 첫 번째 은퇴였다.

1993 12월: 조던은 시카고 화이트삭스 팀에서 뛰기 위해 야구 훈련을 시작했다.

1994 2 7일: 조던은 자유 계약 선수로서 화이트삭스팀과 계약을 맺었다. 그는 실패를 두려워 하지 않았으며, 화이트삭스는 봄에 있을 스프링 캠프에 그를 초대하였다.

1994 3 21 : 화이트삭스팀은 조던을 마이너 리그 캠프에 참가하도록 했다.

1994 3 31: 화이트 삭스팀은 조던이 더블 A  버밍햄 배론스 팀에서 뛰도록 했다.

1994 4 8일: 조던은 우익수로서 첫 프로 경기를 치렀다. 조던은127경기에서 뛰며 30개의 도루를 기록했다. 그의 존재로 인해 버밍햄 구단은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1994 9 9일: 조던은 스카티 피펜이 주최한 자선 경기에서 52득점을 했다. 그 경기는 시카고 스타디움에서 열린 마지막 경기였으며, 조던은 무릎을 꿇고 코트 바닥의 중앙에 키스를 했다.

1994 9-11 : 조던은 애리조나 가을 리그에서 스캇데일 스코피언(Scottdale Scorpion 팀에서

뛰며 35경기를 치러 0.252 의 타율을 기록했다.

1994 11 1 : 불스는 조던의 23번을 영구 결번으로 지정하였으며, 불스의 새로운 홈구장인 유나이티드 센터 입구에 조던의 동상을 세웠다.

1995 2 17 : 화이트사스팀의 스프링 캠프 시작과 함께 조던은 32번째 생일을 맞이했다.

1995 3 7-9 : 조던이 불스의 연습장에 모습을 보이면서부터 '복귀'에 대한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1995 3 18 : 조던과 불스는 그가 팀에 다시 합류할 것이며, 다음주 인디애나 페이서스와의 경기때 공식적으로 뛰게 될 것이라 했다.

1995 3 19 : 조던은 45번을 달고서 복귀했으며, 38분을 뛰며 19득점, 6리바운드, 6어시스트를 기록했다. 불스는 연장전 끝에103-96으로 패했다.

1995 3 28 : 돌아온지 5경기만에 조던은 55득점을 쏟아부으며 메디슨 스케어 가든에서 열렸던 뉴욕전에서 113-111로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1995 5 18 : 조던과 불스는 동부 컨퍼런스 결승에서 올랜도 매직에 2 4패로 패해 탈락했다. 조던이 이끄는 불스팀이 준결승에서 도중하차한 것은 1989-90 시즌 이후 처음이었다.

1996 6 16 : 조던은 복귀이후 처음으로 82경기를 모두 뛴 시즌에서 결승전에서 시애틀을 꺾고 불스를 다시 챔피언으로 이끌었다. 불스는 72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웠으며, 조던은 8번째 득점 타이틀과 시즌MVP, 올스타 게임 MVP, 파이널 MVP를 휩쓸었다.  

1996 11 30 : 샌안토니오 전에서 25,000 득점을 기록했다.

1997 6 13 : 조던과 불스는 6경기 만에 유타 재즈를 꺾고 황제 복귀 후 2번째 NBA 타이틀을 획득했다.

1998 3 27 : 조지아 돔에서 열린 애틀랜타와의 경기에 무려 62,046 명의 관중에 운집했다. NBA 역사상 최다 관중 동원 기록이었다. 조던은 34득점을 기록하며불스의 89-74 승리를 이끌었다.

1998 4 3 : 조던은 미네소타 전에서 41득점을 기록하며 NBA 역사상 29,000 득점을 기록한 3번째 선수가 됐다.

1998 6 14 : 불스가 재즈를 누리고 NBA 3년 우승에 성공했다. 조던은 3년 연속 득점왕 (통산 10)이 됐으며 정규시즌과 파이널 MVP, 그리고 올스타게임 MVP 가 됐다.

1999 1 11 : 조던이 은퇴할 것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1999 113  조던의 은퇴 기자회견이 열렸다.

 

조던이 은퇴를 선언하자 LA 레이커스의 스타 코비 브라이언트는 "나는 그를 상대로 플레이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최고의 선수를 상대로 플레이할 때, 큰 자극이 됐다.그를 보며 자극을 받았던 선수들은 성장했고, 이제 그를 대신해서 다른 선수들이 최고 자리로 올라설 것이다. 나는 젊은선수로서 마이클과 이전 세대 선수들이 발전시켜 놓은 것을 코트 안팎에서 전통을 이어갈 책임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코비의 동료였던 에디 존스는"아침에 조던의 플레이를 담은 영상을 봤다. 그가 믿기 어려운 동작으로 두 선수를 제치는 장면을 보면서 나는 속으로 그의 모든 플레이가 그리울 것 같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다음은 조던의 현역 시절 하이라이트 필름을 텍스트로 옮긴 것이다.

1982 NCAA 결승전 조지타운 전에서 코너에서 점프슛을 성공시켜 노스캐롤라이나대의 우승을 견인함.

1986년 보스턴 셀틱스 전에서 플레이오프 최고 기록인 63득점을 기록. 1985-86시즌에 조던은 부상으로 정규시즌 18경기에만 출전했다. 당시 인터뷰에서 버드는 "신이 오늘 밤 경기에 왔으며 마이클 조던이라는 이름으로 뛰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불스는135-131로 석패.

1989년 클리블랜드와의 플레이오프. 1점차로 지는 상황에서 조던은 이리저리 드리블하다가 크레익 일로를 제치고 던진 골이 성공.이 장면은 조던에 대한 특집 방송이 나올 때마다 팬들에게 보여져 클래식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불스가 2라운드 진출

1991년 레이커스와의 챔프 결정전에서 조던은 공중에 뜬 상태로 오른손에 있던 볼을 왼손으로  바꿔 뱅크슛 성공.

1992NBA 챔프 결정전 대 포틀랜드 전. 후반에만 플레이오프 기록인 6개의 3점슛 성공.

1993년 동부 컨퍼런스 준결승 시리즈에서 제럴드 윌킨스를 제치고 클리블랜드 전 두 번째 결승골.

1995년 복귀 후 4번째 경기인 애틀랜타 전에서 스티브 스미스 너머로 결승골.

1997 NBA 파이널 개막전에서 브라이언 러셀을 제치고 결승골 성공. 재즈와의 5차전에서 결승 3점슛을 넣으면서 38득점.


팬들은 그가 첫 번째 은퇴를 선언한 후 복귀했기 때문에 두 번째 은퇴 후에도 재복귀를 기대하는 분위기였다
.

그는 은퇴 기자회견에서 자신이 돌아오지 않을 가능성은 99.9%라고 말했다. 100%라고 하지 않은 이유는 0.01%의 가능성을 남겨두고 싶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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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불스는 NBA 챔피언 결정전에서 서부 컨퍼런스 챔피언인 유타 재즈를 만났다. 재즈와 2년 연속 챔피언 트로피를 놓고 펼치는 대결이었다. 불스는 1차전에서 일격을 당했다.

1998 63일 유타주 솔트레익시티에서 열린 챔피언 결정전 1차전에서 재즈의 존 스탁턴은 연장전 막판에 클러치 샷을 터뜨리는 등 연장전에서만 7득점을 올리며 맹활약, 소속팀에 88-85승리를 안겨줬다. 재즈는 서부 컨퍼런스 결승에서 레이커스에 4전 전승을 거둔 상승세를 이어갔던 것이다.

재즈는 10일간 휴식을 취한 게 보약이었다. 불스의 조던은 33득점을 올렸지만 연장전에서 결정적인 턴오버를 범했고 중요한 드라이빙 샷을 놓쳤다. 특히 4쿼터 75-72 상황에서 스카티 피펜이 3점슛을 성공시켰을 때 조던은 자신에게 공을 패스하지 않았다고 피픈을 혼내는(?) 분위기를 연출해 팀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들었다. 재즈의 '우편배달부' 칼 말론은 중거리슛 연속 10개를 미스하는 등 부진했으나 연장전에서 중요한 슛 2개를 연속 성공시키며 "역시 말론이다"라는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불스의 데니스 로드맨은 팀의 패배 가운데서도 빛나는 플레이를 여러 차례 했다. 그는 경기 전 엄지 손가락 부위에 큰 부상을 입었는데도 고통을 참고 투혼을 발휘해 2쿼터에만 5개의 리바운드를 잡아냈 다. 재즈는 벤치선수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기록상에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주전급 선수들이 벤치에 쉴 때 오히려 점수차 를 벌리는 역할을 했다. 스탁턴의 백업 가드인 하워드 아이즐리는 1차전에서 8득점, 6어시스트, 2개의 스틸을 기록하는등 맹활약하며 코트를 종횡무진 누볐다.



삐걱댔던 무적함대 불스는 2차전에서 비웃는 사람들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조던과 피펜은 불스의 4쿼터 점수 중 2 점을 제외하고 모두 넣어 2인 군단의 파워가 막강함을 보여줬다. 조던은 2차전에서 승리한 후 "사람들은 피펜과 내가 나이에 비해 너무 코트에 오랜시간 뛰는 것 아니냐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나이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훌륭한 팀을 물리쳤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조던은 이날 4쿼터 13득점을 포함 37득점을 기록했고 피펜은 21득점, 쿠코치는 13득점했다. 1차전과는 달리 2차전에서는 시종 미소를 잃지 않았던 조던은 "경기를 즐기기로 했다. 그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는데 그의 이러한 감정 변화가 팀 분위기에 큰 영향을 끼쳤다.



3차전은 불스의 완승이었다. NBA에 샷클락 (Shot Clock)이 도입된 이래 한 경기 최저 득점은 55점이었는데 재즈가 3차전에서 이 기록을 깼다. 54득점에 그쳤던 것. 불스가 96-54로 완승, 시리즈를 21패로 앞서 나갔다.

재즈는 이 경기에서 여러 기록을 경신했다. NBA챔피언 결정전 최다 점수차(42)로 패배, 최저 야투성공(21개만 성공), 후반전 최저득점(23) 기록을 세웠다.

"빌어먹을(Damn).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이다" 재즈의 그렉 포스터는 경기 후 실망스런 목소리로 말 했다.

불스는 4차전에서도 승리해 시리즈 마감을 눈앞에 두게 됐다. 4차전에서 86-82로 승리한 불스의 관심은 조던이 아닌 로드맨에 쏠렸다. 악동 로드맨은 4차전에 열리기 전 연습에 무단으로 불참하고 레슬링 경기를 관전하러 가 모든 이의 관심을 집중시킨 바 있다. 로드맨은 우려와는 달리 이날 4쿼터 종료 3분여를 남기 고 중요한 자유투를 4개나 넣었다. 로드맨의 자유투 4구는 마이클 조던이 중요한 상황에서 4개 중 무려 3개를 미스한 것과 비교되면서 더욱 빛났다.

로드맨은 또한 재즈의 '우편배달부' 칼 말론의 공격을 4쿼터에 완벽히 차단했다. 

조던은 4차전에서 34 점을 올리며 맹활약했다. 그는 4 쿼터 후반부 박빙의 리드를 지킬 때 포스트업을 하며 쉽게 점수를 올려 재즈의 거센 추격에 쐐기를 박았 다. 피펜은 경기 초반 4개의 3점슛을 연속으로 성공시켰고 공격과 수비에서 종횡무진 활약했다. 4차전 28득점.

5차전에서는 재즈가 승리했다. 시리즈는 32패로 불스 리드. 6차전이 유타에서 열리기에 불스는 부담스러운 원정이었다. 불스는 NBA 챔피언 결정전에서 단 한 번도 7차전까지 가본 적이 없었다. 모두  6차전 또는 이전에 승부를 끝냈다.



6차전은 마이클 조던의 환상적인 슛으로 유명한 경기다. 경기 종료 5.2초를 남긴 상황에서 조던은 브라이언 러셀을 제치고 멋진 중거리슛을 성공시켰고 불스는 87-86으로 앞서 나갔다. 이 장면은 역대 최고의 명장면 중 하나로 꼽힌다. 5.2초를 남긴 상황에서 재즈의 스탁턴이 슛을 시도했는데 공은 림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불스의 승리였다. 지난 8년 동안 6차례 우승이었다. 이날 조던은 45득점을 기록했고 챔피언 결정전 MVP로 선정됐다.

조던은 경기 후 정말 긴 여정을 지나왔다. 우리는 해냈다고 말했다. 그는 팬들과 언론의 도움 그리고 신이 주신 능력으로 여기까지 온 것 같다고 덧붙였다. 우승을 한 이틀 후 불스는 시카고 그랜트 파크(이후 오바마 대통령이 당선된 후 당선 수락 연설을 했던 장소)에서 팬들과 축하 파티를 했다. 이 자리에서 조던은 내가 어떤 결정을 하든 나는 시카고를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았다.



필 잭슨 감독은 확고했다. 이것이 불스와의 마지막이라고 그는 말했다. 사람들은 궁금해했다. 조던이 은퇴를 할 것인지 하지 않을 것인지에 관심이 집중됐다. 조던은 잭슨이 없는 팀에서 뛰고 싶지 않다고 말해 은퇴를 기정사실화했다.

불스가 챔피언이 된 후 이 팀의 구단주인 제리 라인스도프는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불스는 10일 이내에 새 감독을 결정할 것이며 이는 슈퍼스타 마이클 조던의 미래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 말했다.

하지만 조던은 새 감독에게 자신의 플레이 스타일과 자신의 성격을 맞추기가 사실상 힘들다고 말했다.

조던의 은퇴 결정은 그러나 NBA 직장폐쇄로 인해 조금 복잡하게 됐다. NBA는 그 직장폐쇄 상황에서 어떤 비즈니스를 할 수 없었고 물론 불스는 선수와의 계약 등을 할 수 없었다

NBA 구단은 감독, 코치와는 계약을 할 수 있었기에 불스는 팀 플로이드 전 아이오와대 감독을 새 감독으로 영입했다. 1998 722일 발표가 있었다. 플로이드의 영입으로 조던의 은퇴를 확실해졌다.  조던은 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플로이드가 불스에 오면 뛰고 싶지 않다고 밝힌 바 있다.

조던은 한 골프대회에 참가 중 기자 회견을 통해서 "난 플로이드를  모르고 플로이드 감독도 나를 모른다. 이런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며 플레이를 하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플로이드는 NBA코치 경력이 전무한 감독이었다. 이에 대해 조던의 에이전트였던 데이비드 포크는 신임감독 선정에 대해 "1년 전에 이미 결정난 것"이라고 말하고 "조던이 다음 시즌에 뛸 것인지의 여부는 아직 확정된 것은 없다"고 설명했다.

조던의 은퇴 결정은 NBA직장폐쇄가 마무리 지어지면 발표되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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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98시즌이 시작하기 전 시카고 불스에 두 가지 문제가 생겼다. 첫째, 필 잭슨 감독과 불스 구단의 연봉 협상이 난항을 거듭했고 스카티 피펜도 이전 계약에 묶여 제대로 대우를 못 받는 것에 대한 불만을 터뜨렸다.

잭슨 감독은 공개적으로 이번이 마지막 시즌이라고 말했고 피펜은 발 수술을 받고 2개월 동안 경기에 출전할 수 없게 됐다. 마이클 조던도 35세의 노장이 되기 직전이라 농구 전문가들은 이제 불스의 시대는 끝난 것 같다고 전망했다.

실제 시즌 뚜껑을 열어보니 불스는 2년 연속 챔피언이 됐던 그 팀이 아니었다.

“불스는 더는 공포의 대상이 아니다”라는 탄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선수들도 불스를 두려움의 대상으로 보지 않았다. 워싱턴 위저즈의 스타 크리스 웨버는 바로 전 시즌에 플레이오프에서 불스에 3전전패를 당한 기억은 오래전의 일인 것처럼 말했다.

불스는 1997-98시즌 첫 8경기에서 44패를 기록했다. 불스답지 않은 성적이었고 불스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피펜이 수술로 출전하지 못한 것이 불스 부진의 주요인이었지만 그래도 44패는 좀 심했다.  

피펜이 없으니 조던도 부진할 수밖에 없었다. 1997 1112일 위저즈와의 경기에서 조던은 28점을 올렸다. 득점 기록만 보면 문제가 없었다.그러나 조던은 28개의 야투 중 단 10개만을 성공시켰다. 초반에는 그런 성적이 이어졌다.

‘오리지널 조던’의 실력이 아니었다. 8경기에서 조던은 야투성공률 38%에 게임당 평균 24점을 넣어 생애 통산 평균 득점 32점에 무려 8점 차가 났다. 상대팀은 피펜이 없으니 조던을 이중, 삼중으로 방어하면 쉽게 수비를 할 수 있었다. 전문가들은 조던이 혼자 경기를 풀어나가야 했기 때문에 압박감이 심하다고 분석했다.

불스가 연패를 당하자 조던은 위저즈전이 끝난 후에 아예 인터뷰도 거절했다. 불스의 필 잭슨 감독은 “현재 조던의 손목과 손가락 상태가 좋지 않아 컨디션이 나쁠 뿐이고 불스의 패인은 다른 선수들의 부진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가드였던 스티브 커는 “현재 우리는 슈팅, 리바운드, 수비등 모든 분야에서 형편없다. 조던의 책임으로만 돌리지 마라”고 강조했다.

어떤 이들은 불스의 부진을 데니스 로드맨의 무성의한 플레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로드맨은 코트 안팎에서 각종 문제를 만들어 냈다.

불스가 계속 부진하자 CNN의 한 기자는 조던과의 인터뷰에서 34세의 나이 때문에 부진한 것 아니냐고 질문을 했다. 조던은 상당히 불쾌해했다. 조던은 이 질문에 “어느 시즌보다 몸 상태가 좋다”고 답했다.



조던은 이후 조금씩 살아났다. 1997 129일 그는 뉴욕 닉스 전에서 29득점을 기록, 생애 통산 27,432점으로 역대 득점 3위였던 모지스 말론을 4위로 밀어냈다. 그는 카림 압둘 자바(38,387)와 윌트 체임벌린(31,419)에 이어 역대 득점 순위 3위에 올랐다. 센터를 제외한 선수 중에서는 역대 1위였다.

불스는 12월에 5연속 승리를 거두는 등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크리스마스까지 불스는 179패가 됐다. 조던은 이후 올스타전에서 MVP로 선정돼 개인 통산 3번째 올스타 MVP 트로피를 받았다. 1998 327일은 역사적인 날이었다. 불스 대 애틀랜타 혹스전에 무려 62,046명의 관중이 입장했다. 이 경기는 풋볼경기장인 조지아돔에서 열렸다. NBA 역사상 최다 관중 동원 기록이었다.

시즌 초반 누구나 이길 수 있는 팀처럼 보였던 불스는 조던의 맹활약 덕에 시즌을 6220패로 마쳤다. 조던은 82경기 전 경기에 출전했다.

1998년 플레이오프가 시작했다. 불스는 역대 6번째 우승과 함께 3년 연속 우승을 노렸다. 모두 조던 시대에 이뤄낸 업적이었다. 플레이오프 첫 상대는 뉴저지 네츠. 불스는 가볍게 3전전승을 거두고 다음 라운드에 진출했다. 다음 상대는 샬럿 호네츠였고 역시 조던의 불스는 41패로 쉽게 승리했다.



다음 상대는 만만치 않은 인디애나 페이서스였다. NBA 플레이오프 동부 컨퍼런스 결승에서 만난 페이서스는 래리 버드가 감독으로 있었고 플레이오프에서 상승무드를 탔다. 1차전은 조던 쇼로 펼쳐졌다.

1998 517일 시카고 유나이티드 센터에서 열린 1차전에서 불스는 전반전 열세를 단단한 수비로 만회하며 8579로 신승했다. 이 경기 승리의 견인차는 후반전에 소나기 슛을 퍼부은 조던이었지만 숨은 공로자는 피펜이었다. 피펜은 페이서스의 포인트 가드인 마크 잭슨을 철저하게 봉쇄하며 팀 수비를 리드, 페이서스가 26개의 턴오버를 범하도록 유도했다. 피펜은 비록 공격에서 9개의 슛중 1개만을 성공시키는 부진을 보였고 토니 쿠코치가 11개의 슛시도중 2개만을 바스켓에 넣었지만 철벽 수비가 모든 것을 만회했다. 불스는 이날 조던마저 초반 9개의 야투 중 1개만을 성공 시키는 극도의 부진을 보였지만 그는 마지막 24분을 남겨 놓고 신들린듯한 막판 슛을 쏘아대며 31득점을 올렸다.

조던은 1차전 승리를 거두는 날 정규 시즌 MVP로 선정됐다는 발표가 있었는데 불스 팬들은 경기도중 "M-V-P"를 외쳐대며 조던의 수상을 축하했다.

불스는 2차전에서도 승리했다. 예상과는 달리 시리즈가 싱겁게 끝날 것처럼 보였다. 2차전에서 조던은 41득점을 올리는 맹활약으로 소속팀의 10498 승리를 견인했다. 페이드어웨이 슛, 골밑 돌파, 덩크, 리바운드, 수비등 농구의 황제답게 코트를 누빈 조던은 특히 4쿼터의 활약이 돋보였다. 이날 홈팬들 앞에서 MVP트로피를 받은 조던은 41득점으로 생애 통산 35번째 플레이오프 40+ 득점 경기를 기록했다.

1차전에서 특이한 수비작전으로 성공했던 불스는 2차전에서도 같은 작전을 사용했다. 피펜을 페이서스의 게임플레이어 마크 잭슨 전담 마크맨으로 붙였고 론 하퍼로 하여금 레지 밀러를 밀착 방어하게 했다. 역시 성공이었다.



하지만 3차전부터 페이서스의 본격적인 반격이 시작했다. 3차전의 승리는 페이서스의 몫이었다. 3차전 3분여 남은 상황에서 페이서스는 92-89로 리드했는데 절뚝거리는 발을 이끌고 코트에서 투혼을 발휘한 레지 밀러가 3점슛을 성공 시켰고 이후 그는 중거리슛을 하나 추가해 불스의 추격을 따돌렸다.

불스는 경기 종료 30여초를 남기고 조던의 자유투와 피펜의 3점슛으로 순식간에 101-99로 추격했고 23초를 남긴 상황에서 조던이 3점슛을 성공시켜. 103-102 1점차로 따라붙었지만 농구 황제가 막판에 얻는 자유투 3구 중 한 개를 놓쳐 결국107-105로 석패했다.

4차전에서는 페이서스의 장신 센터 릭 스미츠(2m11cm)의 맹활약에 힘입어 다시 페이서스가 승리해 시리즈는 22패 원점이 됐다. 5차전에서는 다시 불스가 승리해 달아났지만 페이서스는 이전의 불스 상대와 달랐다. 6차전에서 페이서스는 멋진 승리를 거뒀다. 불스 입장에서는 좀 억울한 패배였다.

물론 '억울함은 시카고 팬들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인디애나폴리스에서 열린6차전에서 경기 종료 2초를 남겼을 때 조던이 페이서스 수비수의 발에 걸려 넘어져 골밑 돌파에 실패했지만 심판이 휘슬을 불지 않았다. TV 슬로모션을 통해 본 결과 조던은 발에 분명히 걸려 넘어졌다.

조던은 경기후 "심판이 휘슬을 불어 줬어야 하지만 판정에 불만은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7차전에서 승리 를 할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황제답게 말했다.

경기 종료 5초전. 91-89로 페이서스가 리드하고 있는 상황에서 불스는 마지막 공격을 했다.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조던이 마지막 슛을 책임지는 순간이 왔다. 조던은 공을 드리블하며 골밑을 향해 질주했다. 그런데 공을 놓치고 말았다. 상대편 수비수의 발에 걸려 넘어졌던 것. 페이서스는 떨어진 공을 낚아채 공격으로 연결시켰고 자유투를 얻어 1점을 보태며 경기를 마무리 지었다.




6차전에서 페이서스는 간판 스타 레지 밀러가 극도로 부진했지만 트래비스 베스트 , 릭 스미츠, 데일 데이비스의 맹활약이 돋보였다. 특히 조던의 밀착 방어를 받았던 베스트는 중요한 순간마다 중요한 슛을 성공 시켜 팀 승리의 주인공이 됐다. 베스트는 경기종료 33초를 남긴 87-87 상황에서 불스의 스티브 커 머리 위로 뱅크샷을 성공시켰고 8초 남은 상황에서 파울 샷을 유도해 2구를 모두 득점으로 연결시켰다.

불스는 실로 오랜만에 플레이오프 최종 7차전을 치르게 됐다.


최종
7차전은 시카고에서 열렸다. 불스는 경기 초반 13점 차로 뒤져 3년 연속 우승에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이날 경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장면을 자주 연출했다. 특히 불스가 큰 점수차로 뒤질 때 와 막판 몇 분 남겨두지 않은 채 역 전을 허용했을 때는 '무적함대'가 무너진다는 기대감 및 허탈감이 교차됐다. 경기 종료 5분을 남겨둔 상황에서 인디애나는 위기를 넘기는 능력이 불스보다 부족했다.

불스 왕국의 마지막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운이 맴돌았다. 초반 13점차로 뒤질 때 그랬고 경기종료 5분을 남긴 상황에서 79 -79 동점이 됐을 때 마찬가지였다. 조던이 이끈 불스는 그러나 5차례의 챔피언 타이틀 획득이 거저 얻은 것이 아님을 보여줬다.

79-79 상황에서 피펜은 점프슛을 성공시켰고 이어 조던은 두 명의 더블팀을 유인한 후 룩 롱리에 노마 크 찬스 패스를 하면서 추가 득점을 도왔다. 페이서스는 안토니오 데이비스의 득점으로 85-83으로 추격했지만 곧 이어진 피펜의 러닝 훅 샷이 네 트에 꽂아지면서 다시 4점차로 벌어졌다.

이어진 페이서스의 공격에서 페이서스의 포인트가드 마크 잭슨은 공을 어이 없게 엉뚱한 곳으로 패스해 결정적인 턴오버를 했다. 불스는 그러나 2번 연속 슛을 미스하고 페이서스에 또 한번의 기회를 허용했다. 페이서스는 데릭 매키가 오픈 샷을 던졌지만 무위로 돌아갔고 조던이 리바운드를 잡았다. 불스는 계속된 공격에서 론 하퍼가 파울을 얻어 자유투 1구를 성공시키며 8초를 남긴 상황에서 5점차로 벌렸다.

조던은 경기 중 슛난사를 한다는 느낌을 줄 정도로 슈팅 난조를 보였으나 여전히 28득점으로 팀내 최다득점을 했고 리바운드도 9개나 잡아냈다. 특히 자기가 던진 공이 미스되면 다시 리바운드를 잡 아 공격에 연결 시킬 때가 많았다.





페이서스는 레지 밀러가
22득점을 올리고 경기 중반까지 3점슛을 연속 성공시키며 '밀러 타임'을 예 고했으나 4쿼터에는 그 모습조차 눈에 띄지 않았다. 조던이 밀러를 압박수비했기 때문이다. 88-83으로 승리한 불스가 3년 연속 NBA 챔피언 결정전에 진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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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행인 2009/12/09 01: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97-98컨퍼런스파이널은 불스의 정신력과 노련미를 느낄수 있던 시리즈였죠..~
    이번에도 멋진 포스팅을 보게되어 기쁩니다 -!!

    • 밝은터 2009/12/09 12:50  댓글주소  수정/삭제

      행인님의 덕담 덕분에 잘 마무리가 지어집니다. 마이클 조던에 대한 몇 개 글이 더 남았는데 2009년에는 마무리지어야 할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