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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잭슨의 50년 인생(최종)-DJ와 MJ

연재/마이클 잭슨 | 2009/08/20 14:02 | Posted by ICCsports 밝은터

지난 대선 때인 1997년 11월 21일 최규선씨가 아태재단으로 마이클 잭슨을 데려와 김대중 당시 국민회의 후보를 만나게 하고 있다. 김 후보는 글을 선물로 주었고, 최씨 옆엔 유종근씨도 보인다.

 

불세출의 스타’ 마이클 잭슨이 50세의 나이에 숨을 거뒀다. 마이클 잭슨처럼 세계적인 관심을 팝스타는 일찍이 없었다. 그는 손에 꼽히는 ‘글로벌 팝스타’였다. 그의 죽음에 관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마이클 잭슨의 50 인생을 돌아보는 ‘마이클 잭슨 50 인생 이야기’를 연재한다. 그는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



(11. 최종)
 DJ MJ

리처드 스트리트가 메이드인 코리아: 정주영과 현대라는 책을 보면 김대중 대통령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1997 대선 당시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낮자 김대중 후보는 팝스타 마이클 잭슨과 억만장자 조지 소로스의 공개 지지를 받아내 세인을 놀라게 했다.”(198페이지)

마이클 잭슨과 조지 소로스는 김대중 대통령과 친분 관계를 유지했고 DJ 재임 시절 한국에 투자를 계획하기도 인물들이다. 마이클 잭슨은 김대중 당선자의 대통령 취임식에 참여해 세계적으로 눈길을 끌었다
.

잭슨은 취임식장에서 KBS방송의 연예가중계와 가진 인터뷰에서김대중 대통령은 멋진 분이다. 최근 들어 급속도로 친한 사이가 됐다 말했다
.

취임식 대통령은 마이클 잭슨과 만남의 자리에서 한국 투자를 당부하기도 했다. 마이클 잭슨의 한국 투자가 이뤄지지는 않았지만 그는 김대중 대통령으로 인해 한국에 대해 꾸준히 관심을 뒀다. 마이클은 쌍용그룹과 손을 잡고 네버랜드 아시아를 건설하는 원칙적인 합의를 봤지만 끝내 주머니를 열지는 않았다
.

소로스도 DJ 부탁을 받고 한국 투자에 관심을 표명하긴 했지만 여러 이유로 고사하다가 시간이 많이 지난 후에 서울에 있는 보안 회사에 투자를 했다
.

마이클 잭슨은 김대중 대통령에게 남북 통일이 되면 판문점에서 공연을 하겠다는 약속을 하기도 했다. 그의 재임 기간에 판문점 공연을 제안했다. 그러나 안전을 이유로 성사되지는 않았다. 잭슨은 대신 서울에서 번째 한국 공연을 가졌다
.

마이클 잭슨과 친분 관계를 계속 유지했던 김대중 대통령은팝스타 올해 사망하자 대변인을 통해우리는 세계의 영웅을 잃었다 애통한 마음을 드러낸 있다
.

대통령은한반도의 통일에 부단한 관심을 갖고 성원해 사랑스러운 벗을 잃었다면서개인적으로도 우정을 나눠온 좋은 친구를 잃어 슬프다 고인이 마이클 잭슨을 추모했다
.

마이클 잭슨과 김대중 대통령의 친분은 한국 언론에서는 상세히 보도됐는데 언론이나 마이클 잭슨 관련 서적에서는 김대중 대통령에 대해 거의 거론되지 않았다
.

분명한 하나는 마이클 잭슨이 김대중 대통령의 통일 노력, 화합하고자 하는 노력에 감명받았고 어떻게 해서든 DJ 도우려고 했던 점이다
.

마이클 잭슨이 살아 있었다면 DJ 서거에 대해 뭐라고 말했을까. 사람이 같은 세상을 떠난 일은 단지 우연이라고만 말하기에는 무언가 다른 있는 듯하다.



2009/08/20 - [연재] - 마이클 잭슨의 50년 인생(10)-결혼생활
2009/08/11 - [연재] - 마이클 잭슨의 50년 인생(9)-아동성추행 진위
2009/08/07 - [연재] - 마이클 잭슨의 50년 인생(8)-약의 황제
2009/07/31 - [연재] - 마이클 잭슨의 50년 인생(7)-피부색, 성형논란
2009/07/21 - [연재] - 마이클 잭슨의 50년 인생(6)-We Are The World의 탄생
2009/07/18 - [연재] - 마이클 잭슨의 50년 인생(5)-'스릴러'로 세계적 스타 발돋움
2009/07/10 - [연재] - 마이클 잭슨의 50년 인생(4)-가족에서 벗어나 홀로서기
2009/07/08 - [연재] - 마이클 잭슨의 50년 인생(3)-다이애나 로스와의 만남
2009/07/08 - [연재] - 마이클 잭슨의 50년 인생(2)-정글의 사자 같던 아버지
2009/07/03 - [연재] - 마이클 잭슨의 50년 인생(1)-형 호기심 덕에 밴드 시작
2009/06/26 - [특집] - 마이클 잭슨의 50년 인생을 정리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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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잭슨의 50년 인생(10)-결혼생활

연재/마이클 잭슨 | 2009/08/19 14:52 | Posted by ICCsports 밝은터



할리웃 명예의 거리에 있는 마이클 잭슨의 블록에 팬들이 연일 몰려들고 있다. 마이클은 사망한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지금도 명예의 거리에는 마이클의 스타블록을 찾는 팬들이 많다. <사진 제공=서정환>



마이클 잭슨은 생애 결혼 생활을 했다. 번째 아내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딸인 리사 마리 프레슬리였다. 1994 518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결혼을 잭슨과 프레슬리는 1996 118 이혼했다
.

번째 아내는 데비 로우였다. 마이클은 프레슬리와 이혼한 10개월 로우와 혼인 신고를 했으며 1999 108 이혼했다. 사람은 1996 1115 호주 시드니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

마이클이 프레슬리와 헤어진 이유는 성격 차였다. 프레슬리는 2009 피플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마이클은 좋은 사람이었다. 나는 그를 사랑했다. 하지만 그는 성격적인 장애가 있었고 그에게 맞춰가며 살기 어려웠다 말했다
.

로우와의 이혼사유도 비슷했다. 그러나 로우는 마이클과 한지붕 아래서 살지는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로우는 이혼 후에 마이클이 재판을 받을 때마다 긍정적인 변론을 있다
.

충성스러웠던 전처들


세인은 그를 두고 약속을 지키는 충실한 전처라고 평가했다. 물론 비아냥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로우는 재판에서 마이클을 변호하는 말을 했는데 이에 검사 측이사전에 약속된 발언이 아닌가라고 질문을 하자나는 마이클과 아이를 영원히 보호할 이라고 말해 법정 분위기를 숙연하게 하기도 했다.

마이클이 로우와 결혼한다는 보도가 나오기 , 프레슬리는 마이클과의 재결합을 시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마이클 잭슨: 마스크 뒤의 남자라는 책에 보면 프레슬리는 마이클과의 재결합을 위해 유명 변호사인 자니 코크란에게 중간 다리 역할을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

하지만 로우가 인공수정으로 갖게 아이가 세상에 나오자 프레슬리는 마이클의 아내로 복귀할 없게 됐다. 로우는 번째 아이인 프린스 마이클을 1997 2월에 LA 시더스 사이나이 병원에서 낳았다. 로우는 번째 아이를 제대로 없었다. 마이클이 병원으로 와서 아이를 데려갔기 때문이다. 프린스 마이클은 태어나자마자 네버랜드에서 자랐다
.


자녀양육에
올인


마이클은 번째 아이의 양육에 집중했다. 로우는 훗날내가 아이를 만날 있었어도 의미가 없었다. 마이클이 워낙 정성을 다해 아이를 키웠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마이클은 번째 아이를 키우기 위해 보모와 간호사 여러 명을 고용했다. 그는 네버랜드 저택의 실내공기 (air quality) 수시로 조사하는 정성을 다해 첫째를 키웠다.

1998
년에는 번째 아이가 태어났다. 이름은 패리스 캐서린이고 여자아이였다. 패리스 캐서린은 베벌리힐스에 있는 스폴딩 페인 메디칼 센터에서 태어났다. 마이클은 같은 방법으로 둘째 아이를 집으로 데려가 정성스레 양육했다
.

마이클의 번째 자녀는 친부가 마이클이라는 주장이 있다. 프린스 마이클 II 번째 아이의 이름인데 아이는블랭킷으로 알려져 있다. 셋째 아이는 2002 초에 태어난 것으로 기록됐다. ‘블랭킷 친모는 누구인지 알려지지 않고 있다. 마이클은 친모의 뜻에 따라 신원 공개를 하지 않았다
.

그는 영국 방송사의 다큐멘타리 촬영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친모는 대리모였고 나의 정자를 받아 아이를 갖게 됐다. 나는 그가 어떤 인종인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 건강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적인 수준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


셋째
아이 별명을 '블랭킷'으로 이유


다큐멘타리의 인터뷰어였던 바쉬어는셋째 아이를 블랭킷으로 부르냐 질문했는데 이에 마이클은블랭킷은 보호해줘야 한다는 의미로 쓰였다. 이는 축복이라는 단어와 같다. 사랑과 보호를 보여주는 단어라서 그를 블랭킷으로 불렀다 설명했다.

마이클은 자녀가 엄마 없이 자라도 행복했다고 인터뷰에서 말했다. 마이클은아이들의 주변에는 돌봐줄 여성이 많이 있다. 온종일 그들을 돌볼 여성들 말이다라고 덧붙이며사람들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괜찮다고 본다 강조했다
.

그의 가정을 꾸리는 방식, 결혼 방식은 옳다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는 어린 아이들을 사랑했고 어린 아이처럼 살기를 원했던 것은 맞는 같다. 그는 영국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그리고 오프라 윈프라와의 인터뷰에서 어린이들을 사랑하는 , 그들을 돌봐주는 것에 대해 여러 차례 강조한 있다. 실제 건강이 좋지 않은 어린이들이 네버랜드에서 지낼 있도록 했던 그다
.

하지만 어른들의 욕심이 그를 어린이 성추행범으로 몰고 갔고 그의 어린이에 대한 선행은 추행으로 탈바꿈하고 말았다.


2009/08/19 - [연재] - 마이클 잭슨의 50년 인생(최종)-DJ와 MJ
2009/08/11 - [연재] - 마이클 잭슨의 50년 인생(9)-아동성추행 진위
2009/08/07 - [연재] - 마이클 잭슨의 50년 인생(8)-약의 황제
2009/07/31 - [연재] - 마이클 잭슨의 50년 인생(7)-피부색, 성형논란
2009/07/21 - [연재] - 마이클 잭슨의 50년 인생(6)-We Are The World의 탄생
2009/07/18 - [연재] - 마이클 잭슨의 50년 인생(5)-'스릴러'로 세계적 스타 발돋움
2009/07/10 - [연재] - 마이클 잭슨의 50년 인생(4)-가족에서 벗어나 홀로서기
2009/07/08 - [연재] - 마이클 잭슨의 50년 인생(3)-다이애나 로스와의 만남
2009/07/08 - [연재] - 마이클 잭슨의 50년 인생(2)-정글의 사자 같던 아버지
2009/07/03 - [연재] - 마이클 잭슨의 50년 인생(1)-형 호기심 덕에 밴드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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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잭슨의 50년 인생(9)-아동성추행 진위

연재/마이클 잭슨 | 2009/08/10 22:50 | Posted by ICCsports 밝은터


불세출의
스타’ 마이클 잭슨이 50세의 나이에 숨을 거뒀다. 마이클 잭슨처럼 세계적인 관심을 팝스타는 일찍이 없었다. 그는 손에 꼽히는 ‘글로벌 팝스타’였다. 그의 죽음에 관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마이클 잭슨의 50 인생을 돌아보는 ‘마이클 잭슨 50 인생 이야기’를 연재한다. 그는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



(9)
아동 성추행 진위

마이클 잭슨의 인생에서 가장 오명은 바로 아동 성추행 혐의로 차례 고소를 당했던 일이다. 잭슨은 1993 13 소년의 부모로부터 아동 성추행 고소를 당했지만 법정 밖에서의 합의를 통해 무죄가 됐고 2003년에도 아동을 성희롱한 혐의로 재판을 받아 역시 무죄 판결을 받았다.

무혐의 판정을 받았지만 마이클에 대한 이미지는 아동을 학대한 사람으로 굳혀졌다.

마이클은 1995 ABC-TV 프라임타임 라이브에 출연 번째 아동 성희롱 사건 재판에 대해 입을 열었다. 

마이클은 “나는 어린 아이에게 해를 끼친 적이 없다. 마음에 그런 것은 없다. 그런 일에는 흥미조차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그렇다면 법정 밖에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나’라는 질문에 대해 “변호사가 사건을 법정으로 끌고가면 무죄로 풀려날 보장이 없다고 권고해서 안전한 방법을 택한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변호사는 사건이 마무리되려면 7 정도 걸릴 수도 있다고 말해 나는 그렇게 되길 원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마이클
잭슨: 팝의 황제’라는 책을 리사 캠벨은 사건의 발생 동기는 ‘돈’이었다고 결론을 냈다. 13 소년의 아버지가 돈을 노리고 이와 같은 일을 벌였다고 설명했다.


실제
1993 마이클을 고소했던 에반 챈들러의 아들 조디 챈들러는 아버지가 거짓말을 했다고 최근 온천하에 밝혔다. 당시 마이클을 고소함으로 챈들러 가족이 받은 금액은 1,500 달러 이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Michael Jackson 1958-2009

번째 사건은 2003년에 발생했다. 역시 13세였던 소년이 잭슨의 네버랜드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마이클과 한방을 썼다고 말한 것이 문제가 됐다. LA 카운티의 아동 복지국은 잭슨이 이상한 행동을 하지 않았음을 확인했고 소년의 가족들도 아무런 일이 없었다고 밝혔지만 문제는 커졌다.

마이클은 암수술을 받았던 소년을 격려하기 위해 네버랜드로 초대한 것이었고 한방 또는 한침대에서 잠을 잤을 뿐인데 이것이 성희롱 사건으로 불거졌던 것이다. 이후 마이클은 " 소년과 한침대를 썼지만 결코 아무일도 없었다" 밝혔다.

사건으로 법정을 드나들었던 마이클은 정신적으로 충격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심령연구가이자 마술사인 유리 겔러는 언젠가 최면상태에서 마이클에게 성희롱 여부를 질문했는데 이에 '팝의 황제' “그런 일은 결코 없었다. 앞으로도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한편, 마이클은 사건으로 인해 외국으로의 이주를 심각하게 고려했다고 한다. 아동 성학대 사건이 터진 대부분의 미국인은 그가 아동을 희롱했다고 믿었지만 캐나다 몬트리올의 시민들은 성희롱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있다.

 이런 결과에 감화한 마이클은 몬트리올로의 이사를 심각하게 고려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마이클은 실제 몬트리올을 방문해 자신이 곳을 알아봤지만 프라이버시가 침해되지 않을 장소를 찾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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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잭슨의 50년 인생(8)-약의 황제

연재/마이클 잭슨 | 2009/08/06 19:17 | Posted by ICCsports 밝은터


‘불세출의 스타’ 마이클 잭슨이
50세의 나이에 숨을 거뒀다. 마이클 잭슨처럼 전 세계적인 관심을 끈 팝스타는 일찍이 없었다. 그는 손에 꼽히는 ‘글로벌 팝스타’였다. 그의 죽음에 관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마이클 잭슨의 50년 인생을 돌아보는 ‘마이클 잭슨 50년 인생 이야기’를 연재한다. 그는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


(8) '약의 황제'

JET 매거진이 발행한 1993 126일자 잡지의 기사에 보면 이런 내용이 나와 있다.

“마이클 잭슨은 진통제 중독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

당시 마이클 잭슨은 진통제에 중독돼 공연을 중단한 바 있다. JET 매거진에 따르면 잭슨은 진통제 중독과 사투를 벌였고 팬들은 그런 그의 모습에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

잭슨은 1984년 펩시콜라 광고를 촬영하다 화상을 입었고 이로 인해 수술을 여러 차례 받았다. 이후 수술로 인한 통증을 이기기 위해 진통제 다량 복용은 필수였다는 것이 마이클 측근의 설명이었다. 팬들은 그런 그를 불쌍히 여겼다.

그러나 진통제 중독은 그의 삶을 점점 더 비참하게 만들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마이클은 약 중독으로 이상행동을 했고 건강은 점점 악화했다. 이에 가족들이 나서 그의 약중독을 해결하려고 했지만 그는 말을 듣지 않았다. 가족들은 그가 약으로 인해 통제 불능상태까지 왔다고 판단했다.

진통제에 의지해 통증을 이겨내려고 했던 마이클은 치명적인 마취제인 ‘프로포폴’까지 손을 댔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는 의학계에서도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전문가들조차 “프로포폴이 가정에서까지 그렇게 사용된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을 정도다.


if anything.....read this
if anything.....read this by y-its-mom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마이클의 집에서 유모로서 일했던 그레이스 르와람바(42)는 런던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마이클은 자주 많은 약을 섞어 먹었다. 그래서 위험한 상황이 여러 차례 있었다”고 밝힌 바 있다. 르와람바는 마이클의 약 중독을 치료받도록 하기 위해 그의 모친인 캐서린과 재넛에게 사실을 알렸는데 이를 알게 된 마이클은 곧바로 유모를 해고했다고 한다.

마이클 잭슨은 약물 사용에 대해서는 그 어느 누구의 간섭도 허락하지 않았다. 마이클의 일대기를 쓴 한 작가는 마이클이 약물에 대해서는 “고집스럽다”는 표현을 쓸 정도였다. 집착이라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마이클은 약물 중독으로 한때 지적 능력이 잠깐 크게 떨어져 종적을 감춘 적도 있었다.

잭슨이 약물로 통증을 제거하고 안정을 취하려는 삶의 방식은 엘리자베스 테일러(배우)의 영향도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데일리 비스트지에 따르면 테일러는 마이클에게 아놀드 클라인 박사를 소개했는데 이 의사는 두 스타에게 아편이 들어있는 약을 처방했다고 한다.

약중독 이야기는 그의 가수인생만큼이나 화려했다. 그와 연관된 약물 이름은 수십 가지에 이르렀다. 그가 마취제인 프로포폴까지 쓴 것을 보면 ‘약물 중독’으로 사망했다는 결론을 쉽게 내릴 수 있다. ‘이것이 타살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것만 남았다. 그는 ‘팝의 황제’인 동시에 ‘약의 황제’였다.


2009/07/31 - [연재] - 마이클 잭슨의 50년 인생(7)-피부색, 성형논란
2009/07/21 - [연재] - 마이클 잭슨의 50년 인생(6)-We Are The World의 탄생
2009/07/18 - [연재] - 마이클 잭슨의 50년 인생(5)-'스릴러'로 세계적 스타 발돋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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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피부색, 성형논란

1980년대 마이클 잭슨이 세계적인 스타로 주목을 받자 언론들은 앞다퉈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취재했다. 때맞춰 잭슨의 얼굴 피부색이 바뀌면서 세인의 관심은 증폭했다.

 그의 피부색이 점점 하얘진 시기는 1980년대 초반이었다. 랜디 타라보렐리가 1986년에 마이클 잭슨 일대기에 따르면 잭슨은 백반(vitiligo) 낭창(lupus) 같은 병에 걸렸다. 백반은 마이클의 피부를 하얗게 했다. 

 

Michael Jackson
Michael Jackson by G A R N E T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마이클의 피부 표백설은 틀린 주장

  병은 그의 피부가 햇빛에 민감하게 했다. 마이클은 20 초반에 증세가 있음을 발견했다.

 마이클 잭슨 평전(Michael Jackson, the king of pop) 썼던 루이스 존스는 “마이클은 자신의 피부를 표백한 적이 없었다. 그러한 소문은 틀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마이클의 피부 색깔이 계속 변하자 당시 소문은 점점 제어할 없을 정도가 됐는데 존스는 이에 “이는 피부암이나 마찬가지다. 너무나 고통스러운 병이다. 마이클이 마스크를 자주 쓰고 다녔던 이유도 병에 걸린 피부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마이클 잭슨은 시기에 성형수술 중독자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마이클은 훗날 이렇게 말했다. “나는 코만 성형 수술했다. 다른 부분은 손을 대지 않았다”라고 설명했다. 수술도 공연 도중 다쳐서 어쩔 없이 했던 것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엘비스도 수술 했는데...

 잭슨은 1999 12 JET지와의 인터뷰에서 “할리우드 스타들은 모두 성형수술을 하는데 수술을 나에게만 모든 집중되고 말을 만들어내는지 모르겠다”며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당시 인터뷰에서 잭슨은 “엘비스 프레슬리도 수술을 했었는데 그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대중은 여전히 마이클을 ‘성형수술 중독자’로 낙인찍었다. 20/20라는 TV 방송은 이를 확인시켜줬다. 방송을 마이클은 분노했다. 그리고 프로그램의 진행자인 바바라 월터스에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그는 월터스에게 “얼굴이 변한 것은 다이어트 프로그램의 결과였다. 나는 채식주의자로 바뀌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월터스에게 코와 수술한 것은 맞지만 더는 아니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Michael Jackson-all the love in the world for you
Michael Jackson-all the love in the world for you by vera199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마이클은 성형수술 중독자였다

 마이클 잭슨이 사망한 후에는 그의 성형 수술에 대한 여러 주장이 있었는데 잭슨의 성형수술 집도의를 도왔던 트린 부셸이라는 간호사는 CBS-TV ‘더 인사이더’와의 인터뷰에서 “마이클은 피부를 하얗게 만들기 위해 레이저로 피부를 계속 벗겨 냈으며 수술 통증을 완화하기 위해 통증 완화약을 계속 복용했다”고 주장했다. 캐트린은 “마이클은 수술이 필요 없을 때도 성형수술을 받고 싶어 했다”고 덧붙였다.

 피플 매거진도 90년대에 마이클의 성형수술을 집도했던 월러스 굿스타인 박사와의 인터뷰에서 “마이클은 2 동안 10-12차례 성형수술을 받았다”는 말을 들었다고 보도한 있다. 굿스타인 박사는 당시 “마이클은 코와 수술을 여러 차례 받았고 눈꺼풀도 수술한 것이다. 다른 수술 부위도 물론 있었다”라고 덧붙였다.

 피플 매거진은 익명의 소식통의 말을 인용, “마이클은 수술을 몰래 받았으며 수술 시간도 일부러 직원들이 모두 퇴근한 늦은 밤으로 잡았다”고 보도했다. 마이클 잭슨의 주장과 상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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