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스포츠 스타 열전 |
2009/07/27 05:13 |
Posted by ICCsports 밝은터
로이 할러데이(토론토 블루제이스)의 필라델피아 필리스행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CNNSI닷컴 등 미 언론은 필리스와 토론토 블루제이스가 할러데이 트레이드에 관한 적극적인 협상에 나서 많은 진전이 있었다고 보도했다. 할러데이가 필리스 유니폼을 입게 되면 2년 연속 월드시리즈 우승을 노리는 필리스는 천군만마를 얻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일부 보도에 따르면 할러데이의 필리스행은 물건너갔다는 소식도 있다.
박찬호의 팀 동료가 될지도 모르는 할러데이에 대해 알아보았다.
빅리그에서 싱글A로 추락 충격
할러데이는 처음에는 가시밭길을 걸었던 야구 선수였다. 77년생인 그는 콜로라도주의 아르바다 고교를 졸업한 후 아마추어 드래프트에서 블루제이스에 의해 1라운드 전체 17번으로 꽤 상위에 지명됐지만 마이너리그에서 오랜 시간 수업을 받았다.
1998년 메이저리그 데뷔를 한 후 1999년 풀타임 빅리거로 자리를 굳혔던 할러데이는 2001년 마이너리그 싱글A로 추락하는 시련을 겪은 바 있다. 2000년 시즌 19경기에 등판, 9이닝 평균 자책점 10.64를 기록한 후 트리플A도 아니고 싱글A로 보내졌던 일을 두고 할러데이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고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싱글A에서 13경기에 등판 재기를 노렸던 할러데이는 이후 더블A, 트리플A에서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고 시즌 중반부터 토론토 블루제이스에 합류했다.
마이너리그행은 행운: 멘탈게임을 배우다
마이너리그로 내려간 것은 그에게는 행운이었다. 마이너리그로 떨어져 괴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그의 아내는 '야구의 멘탈 게임(The Mental Game of Baseball)'이란 책을 건네줬다. 이 책은 할러데이의 야구 인생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이 책은 스포츠 심리학자인 하비 도프먼이 쓴 것으로 저자는 박찬호에게도 심리상담을 해 한국 팬들에게도 잘 알려진 인물이다.
할러데이는 이후 도프먼이 쓴 '피칭의 멘탈 ABC(Mental ABC's of Pitching)'라는 책을 한 시즌에 9차례 정독하며 '멘탈 게임'의 승자가 될 수 있었다. 그의 독서는 당장 개인 성적의 변화를 이끌었다.
2002년 할러데이는 19승7패, 평균 자책점 2.93을 기록하더니 2003년에는 22승7패, 3.25의 놀라운 기록으로 생애 첫 아메리칸리그 사이영상을 받았다. 이후 부상으로 사이영상을 추가하지는 못했지만 그는 야구계에 가장 믿을만한 선발투수로 우뚝 솟아올랐다.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
뉴욕 양키스의 스타 데릭 지터는 할러데이에 대해 “아마도 현재 최고의 투수인 것 같다”고 말했고 알렉스 로드리게스도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뛰어난 투수”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고 있다.
보스턴 레드삭스의 케빈 유킬리스는 “할러데이는 명예의 전당으로 갈 것 같다”고 예견했고 전 미국 대통령인 조지 W. 부시는 “만약 내가 구단주이고 나에게 투수 한 명을 뽑으라고 한다면 할러데이를 선택할 것”이라고 말했다.
2003년 AL 사이영상을 받은 후 어깨 문제로 잠시 주춤했던 할러데이는 2004년 8승8패, 평균자책점 4.20으로 부진했다. 2005년에 들어서는 쾌조의 출발을 했지만 7월8일 라인드라이브에 맞아 발을 다치면서 시즌을 일찌감치 접었다.
2006년, 2007년, 2008년에는 다시 건강을 회복해 3년 동안 52승을 챙겼다. 2008년에 20승을 따내 생애 두 번째 사이영상을 노렸지만 아깝게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클리프 리에 1위 자리를 내줬다
2009년에도 전성기의 실력을 뽐내고 있는 할러데이는 메이저리그에서 12년동안 뛰면서 142승69패, 평균 자책점 3.46을 기록했다.
타자보다 한 수 위의 전략가
투수로서 할러데이의 장점은 타자들의 심리를 파악하면서 공을 던진다는 점과 컨트롤이 정확하다는 것 그리고 싱커가 좋다는 것을 들 수 있다. 할러데이는 뛰어난 타자들과의 대결에서 재미난 승부를 거는 투수로 유명한데 특별히 그들이 좋아하는 공을 미끼로 사용하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99년 2월. 김미현과는 밸리 오브 더 스타스가 열린 캘리포니아주 LA 인근의 오크먼트 컨트리 클럽에서 첫 만남을 가졌다. 당당한 그의 모습에서 미래의 스타임을 읽을 수 있었다.
김미현은 유머를 좋아했다. 모든 질문을 유머스럽게 받아들이려고 해 인터뷰는 '재미나게' 진행됐다. 기자는 될 수 있으면 골프에 대한 질문을 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다른 미디어에서 접할 수 있는 내용을 싣는 것은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의 생각과 삶에 대한 자세를 다루고 싶었다. 다음은 인터뷰 내용. <영어 알파벳 순서로 질문을 했다.>
인터뷰어: 박병기
인터뷰이: 김미현
인터뷰 날짜: 1999년 2월 어느날
인터뷰 방법: 직접 만남 그리고 전화
▶ A goal (개인적인 목표는)? 주변에서는 우승을 한두 번 하라고 하는데 물론 우승을 하면 좋겠지만 욕심을 부리지 않고 상위권(Top20)에 꾸준히 오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주: 이후 김미현은 여러 차례 우승 트로피에 입을 맞췄다.)
▶ Belief (신앙) 기독교인이었습니다. 오빠랑 3살 때부터 교회를 다녔지요. 골프를 시작하면서 교회를 가지 못했어요. 독실한 불교신자이신 할머니의 반대도 있었구요.
▶ Child (어린 시절) 골프만 쳤던 것 같아요. 주변에 골프치는 친구만 있었고 개구쟁이였던 것 같습니다. 어린시절에는 잘 모르는 사람하고 말을 잘 못했어요. 내성적이었지요. 지금은 성격이 많이 바뀐 편이지요.
▶ Demerit (단점은?) 그런 것 없어요. (미소) 굳이 말한다면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때론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지요.
▶ Earnings (수입) 잘 모르겠습니다. 부모님이 모든 것을 관리하시거든요.
▶ Face (얼굴 중 자신 있는 곳) 모두가 자신 있습니다. (웃음)
▶ Gesture (승리할 때 제스처) 웃고 말아요.
▶ Health (건강 관리는 어떻게?) 잘 먹고 잘 자고 그래요. 10시에 자고 6시30분에 기상합니다.
▶ If (만약 골프선수가 아니었다면) 운동했을 것 같아요. 운동을 워낙 좋아하거든요 수영, 스키 등등.
▶ Jinx (징크스가 있다면) 없습니다.
▶ Korea (대표팀 경력)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대학 1학년 때까지 국가 대표 생활을 했어요.
▶ Leisure time (여유 시간에 뭘 하나요?) 영화를 봅니다. 모든 영화를 관심 있게 봅니다. 타이타닉(너무 길어요.) 프린스 오브 이집트가 재미있었어요.
▶ Meeting (미팅 해 본적 있나요?) 없어요. 별로 안 좋아해요. 남자 친구 없어요. 있어도 안 가르쳐 줄래요~~(웃음).
▶ Now who sponsors you(스폰서 하는 곳은 없나요?) 스폰서 받는 곳은 아직 없습니다. 물론 제가 찾지는 않습니다. 잘하게 되면 스폰서가 제게 오겠죠.(주: 이후 스폰서가 생겼다. 아니 줄을 섰다.)
▶ Owing something to someone (빚진 것이 있다면) 빚지고는 못살지요....(웃음)
▶ Question to me? (질문할 것 있으세요?) 남자한테 궁금한 것 없는데요. (필자는 재미난 답변을 유도하려고 했는데~~)
▶ Rival (라이벌이 있다면) 제 자신이 라이벌이지요.
▶ Slump (슬럼프에 대해) 고등학교 2학년 때. 아직 슬럼프라는 것을 거론 할 정도의 위치에 있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굳이 말한다면 지난해 약간의 슬럼프가 있었습니다. 발목 부상 때문에 고생을 좀 했지요.
▶ Travel (기억에 남는 여행) 없어요. 미국에는 몇 개 도시밖에 가보질 않았는데 LA는 한국 같아서 좋아요. 좋은 면은 한국음식을 많이 먹을 수 있다는 점. 나쁜 면은 무서운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에요. 험상궂은 사람들이 많아요. 샌프란시스코도 좋더라구요. 미국에 오지 않았을 때 영화를 통해 미국은 아름답고 크다고 생각했는데 샌프란시스코는 그런 느낌을 되살려 주었지요.
Golden Gate Bridge at Dusk, Dedicated to My Good Friend Robert Scoble by Thomas Hawk
▶ Unforgettable moment (학생시절의 추억) 부산에서 학교를 다녔어요. 어렸을 때부터 골프를 시작했는데 부산에는 골퍼들이 없어서 골프를 치면 '왕따'를 당했어요. 골프는 부자집 애들이 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저를 외톨이로 만들었지요. 그리고 제가 이쁘니까(?) 질투를 했나봐요(웃음). 친한 친구가 있었는데 아이들이 친구까지 따돌리니까 제 주변에는 남아나는 사람이 없었지요. 그래도 저는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사춘기 없이 지나갔던 것 같아요.
▶ Valuables (인생에서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 생각과 웃음이요. 웃음은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은 저에게 유머스럽다고 하는데 저는 소중한 것을 가졌나봐요.
▶ When a man loves a woman (이런 남자라면...) Only you!!!!!! 그렇게 저를 대해 주는 사람이요. 나만 사랑해주는 사람. 좀더 자세히 말한다면 조금 귀엽고! 애교 많고! 유머감각 있는 사람이 좋아요. 선호하는 체격을 굳이 말한다면 홀쭉한 사람보다는 배나온 남자가 좋아요. 그렇다고 너무 뚱뚱하면 싫고요. (주: 이원희 선수가 그런 분인가요?)
▶ X-File (좋아하는 남자 운동선수는.) 박찬호 선수 좋아해요. 박찬호 선수의 친척인 박현순 선수(프로골퍼) 하고 친해서 가끔 소식을 듣지요. 한국 선수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지는 것 멋있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 만나보고 싶느냐는 질문에 김미현 선수는 혹시 스캔들이라도 날까봐 답변을 하지 않았다.)
▶ Y-people-like you? (김미현 선수를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유는) 저는 일단 친해지면 내 모든 것을 내주지요. 한 번 친해지기는 어렵지만 일단 친해지면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 Zeal (열정을 어떻게 불사르고 있나요) 항상 골프만 생각하고 나와의 싸움에서 이기려고 합니다.
▶ 마지막으로 한국 팬들에게 인사 해주세요. 안녕하세요. 여러분들께서 항상 옆에 계시니까 도움이 많이 됩니다. 앞으로도 많이 격려 해주세요. 열심히 노력해서 성원에 보답하도록 하겠습니다.
연재/마이클 잭슨 |
2009/07/20 22:08 |
Posted by ICCsports 밝은터
‘불세출의 스타’ 마이클 잭슨이 50세의 나이에 숨을 거뒀다. 마이클 잭슨처럼 전 세계적인 관심을 끈 팝스타는 일찍이 없었다. 그는 손에 꼽히는 ‘글로벌 팝스타’였다. 그의 죽음에 관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마이클 잭슨의 50년 인생을 돌아보는 ‘마이클 잭슨 50년 인생 이야기’를 연재한다. 그는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
앨범 Thriller로 세계적인 스타가 된 마이클 잭슨은 가족과 다시 앨범작업을 시작했다. 가족과 함께 만든 앨범은 ‘Victory’.
마이클은 투어를 힘들어했지만 가족이 너무 원해 ‘Victory’를 홍보하기 위한 ‘잭슨스 투어’에 합류했다. 마이클은 Thriller 앨범과 관련된 일정으로 바빴지만 가족들의 요청으로 이 투어에 함께 하기로 했던 것이다.
1983년 11월 잭슨 형제들이 오래전에 결성했던 ‘잭슨스’는 투어 계획을 발표했다. 이 투어의 프로모터는 복싱 프로모터로 유명했던 돈 킹이었다. 돈 킹은 이 기자회견에서 혼자 말을 다했다는 비난을 들었다. 이 투어는 펩시가 스폰서했다.
잭슨스의 새 앨범 ‘Victory’는 1984년 7월2일 발매됐다. 기대와는 달리 판매 성적은 좋지 않았다. 이 앨범은 예전처럼 마이클과 저메인이 보컬을 맡은 게 아니었고 형제들이 각자 만든 곡을 합해 놓은 것이었기에 팬들은 외면했다. 마이클의 인기에 힘을 입어 급하게 만든 앨범처럼 여겨졌던 것이다.
‘Victory 투어’는 그러나 인기를 끌었다. 이는 잭슨 형제들의 마지막 합동 콘서트였다. 투어는 1984년 7월6일에 시작, 같은 해 12월9일 막을 내렸다. 55회의 공연에 200만 명의 팬들이 찾았다. 공연은 7500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해 당시 공연 역사상 가장 큰 매출로 기록됐다.
마이클은 그 공연으로 얻은 수익 전액(500만 달러)을 유니세프와 같은 자선단체에 기부했다.
We Are the World 프로젝트
투어를 마친 마이클은 1985년에는 전 세계를 강타한 ‘We Are the World’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는 아프리카의 기아들을 돕기 위한 일을 하겠다고 마음먹고 라이오넬 리치와 함께 ‘We are the World’라는 곡을 썼다. 이 곡은 전 세계 유명 아티스트들이 대거 참여해 화제가 됐다.
이 곡의 녹음에 참여한 아티스트는 45명이었다.
마이클 잭슨, 다이애나 로스, 포인터 시스터스, 밥 딜런, 제임스 잉그램, 티나 터너, 잭슨 가족, 신디 로퍼, 브루스 스프링스틴, 제프리 오스본, 스티비 원더, 레이 찰스 등 당대 최고의 가수들이 ‘We Are the World’를 불렀다.
이 앨범을 제작했던 퀸시 존스는 기자회견에서 “35년 동안 음악 산업에 종사했는데 가장 의미 있는 앨범이다. 참가자 전원은 자신들의 이익보다는 돕는 것에 집중했다. 그 음악을 녹음했던 밤에 모든 아티스트는 자신을 내려놓고 작업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이 곡은 여러 면에서 큰 의미가 있었다. 먼저, 아프리카의 기근 상태를 전 세계적으로 알리는 데 결정적인 공을 세웠고, 기금을 마련하는데도 적절하게 활용됐다. 또한 이 곡은 1986년 열렸던 28회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무려 4개 부문을 휩쓸었다.
We Are the World와 관련된 제품 판매로 얻어진 금액은 총 4400만 달러에 달했다. 다른 보도에 따르면 6300만 달러까지 모금됐다고 한다. 모아진 돈은 아프리카(특별히 에티오피아)의 기아들을 돕는 데 사용됐고 이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생명을 살렸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